[조수진의 책에서 꼽은 문장] p24
"내가 나를 데리러 온 엄마한테 적의를 품고
의식적으로 가까이하지 않으면서도
머리 빗을 때만은 기꺼이
엄아의 손에 나를 내맡겼던 것도
이왕이면 예쁘게 빗고 싶다는
계집에다운 소망하고는 좀 다른 거였다."
"엄마의 야무진 손끝을 통해
전달되는 애정 있는 성깔을
깊이 좋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수진의 책에서 꼽은 문장] p33
엄마는 또 내 귓가에 소곤소곤
내가 서울 가서 앞으로 되어야 하는
신여성에 대해 얘기해주기도 했다.
"신여성이 뭔데?"
"신여성은 서울만 산다고 되는게 아니라
공부를 많이 해야 되는 거란다.
신여성이 되면 머리도 엄마처럼 이렇게
쪽을 찌는 대신 히사시까미로 빗어야 하고
옷도 종아리가 나오는 까만 통치마를
입고 뾰족구두 신고
한도바꾸 들고 다닌단다."
나는 긴 머리꼬리에 금박을 한
다홍 댕기를 드리고 싶었고,
같은 빛깔의 꼬리치마를 버선코가
보일락 말락 하게 길게 입고 그 위에
자주 고름이 달린 노랑 저고리를
받쳐 입고 꽃신을 신고 싶었다.
[조수진의 책에서 꼽은 문장] p127
어머니의 눈의 푸른 기가
애처롭게 흔들리면서 입가에
비굴한 웃음이 감돌았다.
나는 어머니가 환각으로
보고 있는 게 무엇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가엾은 어머니,
차라리 저승의 사자를
보시는 게 나았을 것을......
어머니는 그 다리를 어디다
숨기려는지 몸부림쳤다.
그러나 어머니의 다리는
요지부동이었다.
"군관 나으리, 우리 집엔
여자들만 산다니까요.
찾아보실 것도 없다니까요.
군관 나으리."
그러나 절체절명의 위기가
어머니에게 육박해오고
있음을 난들 어쩌랴.
공포와 아직도 한 가닥
기대를 건 비굴이 어머니의
얼굴을 뒤죽박죽으로
일그러뜨리고
이마에선 구슬 같은 땀이
송글송글 솟아오르고 다리를
감싼 손과 앙상한 어깨는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었다.
가엾은 어머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차라리 죽게 하시지. 그 몹쓸
일을 두 번 겪게 하시다니.
"어머니, 어머니, 이러시지 말고
제발 정신 차리세요."
나는 어머니의 어깨를 흔들면서
울부짖었다.
[유시민의 책에서 꼽은 문장] p116
수술실 물이 열리고,
아직 수술복인 채인 의사가
눈만 반짝거리는 커다란
마스크의 한쪽 끝을
천천히 귀에서 벗기면
입가엔 어려운 일을 성공적으로
끝낸 사람 특유의 만족스러운
피곤이 감돌고, 마침내 입을 열어
"안심하십시오.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하면
가족들이 혹은 우러러보기도
하고, 혹은 머리를 조아리기도
하면서 감격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광경은 출구 쪽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입구는 환자를 받아들이고
출구는 환자를 토해내고
가족은 전송하고 마중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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