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재형 PD의 세 번째 책.
에 이은 세 번째 책인데.
스피릿 로드의 짜릿함에는 못 미친다.
확실히 술 전문가이니만큼, 스피릿 로드처럼 재밌게 글에서 술맛이 느껴지게는 안 써져 있다.
오히려 좀 감상에 젖어서 내내 차분한 느낌의 글이 이어진다. 종종 톡톡 튀긴 하지만,
탁PD의 여행수다가 완전 날 것의 책이라면, 스피릿 로드는 내내 흥분상태의 찬양회, 부흥회이다.
그래서 훨씬 신나고, 각종 증류주를 먹어보고 싶은 열망이 가득해진다.
그리고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어는 '글'을 쓰고자 하는 여행PD의 글인 것 같다.
다양한 표현이 여행의 느낌을 생생히 전달하지만,
정제되어 있고, 차분해서. 오히려 예전의 책들이 훨씬 재미는 있는 것같다.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어.
그보다는, 비를 맞아도 괜찮은 날이면 좋겠어.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_랄프와 마법의 양탄자
- 만일 내가 야생동물이었다면, 척추를 다치고 나서 살아남았을 확률은 거의 없었을 거야. 이건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부위가 아니니가. 그나마 의학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인간으로 태어난 덕택에, 이렇게 목발을 짚고라도 걸을 수 있는 것 아니겠어.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중독_Choudoufu의 위험한 향기
- 우리에게 홍어가 있다면 스웨덴엔 수르스트뢰밍이 있고, 프랑스에는 에푸아스 치즈가 있고, 캄보디아에는 프라혹이, 태국에는 두리안이 있어. 이런 음식들은 몇 개의 공통점이 있지 먹다보면 중독되고, 그럼으로써 열광적인 추종자들을 거느리게 돼. 그 냄새와 맛에 대한 기호가 '그 지역 자체를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으로 확대되기도 하지.
그것은 정말 거기 있었을까_Memory by Hand
- 잠자리에 들기 전 잠깐 수첩을 꺼내 아이가 말해준 것들을 끄적였다. 그 덕에 메르세데스는 지금도 나와 함게 있다. 메르세데스라는 이름, 우리에게 보여준 미소, 엄마와 장난을 치던 모습, 나에게 지어준 별명이 아직도 거기에 있다.
크레타 사람 조르바_시간의 主人
- 게르마노스(독일군)라는 고기예요. 맛없어서 못 먹어요.
- 풍파가 많았던 집안의 자식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크레타 사람들은 이중적이다. 마이너한 문제라고 생각하면 아예 신경도 쓰지 않지만, 어떤 것을 품고 가기로 마음먹으면 세상에서 가장 지독해진다. 소설에 나오는 풍운아 조르바와, 과부를 차지하지 못하고 상심에 빠져 자살하는 파블리는 그 두 가지 측면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 조르바가 만든 나무 운반장치는 생각한 것만큼 튼튼하지 않았고, 결국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며 이야기는 파국을 맞이한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 돈과 시간이 부서져 엉켜 있는 잔해 앞에서 그들은 춤을 춘다. 모든 것을 솓아 부은 긑의 실패를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그 춤은 그것을 쏟아 부은 끝의 실패를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그 춤은 그토록 찬란하고 또 처연하다.
전지적 고독 시점_Google Earth
시작이 없으면, 끝도 없다_관계의 발명
엔리케를 찾아주세요_정글의 비즈니스맨
- 열대의 태양과 비는 폭력적이다.
- 세뇨르, 여긴 동물원이 아니에요. 보고 싶은 동물을 시간에 맞춰서 볼 방법은 없어요. 하지만 분명한 건, 아나콘다가 이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과 우리가 그 녀석을 볼 것이라는 사실이에요.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져요.
완벽한 ‘아맥’_맥주가 가장 맛있는 시간
- "맥주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무엇일까요?"라고 묻는다면, '아맥'을 하라고 말해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아홉시 이전에 첫 병을 따는 것이다. 안주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 자본주의 사회에서 완벽하게 아무것도 할 일이 없기 위해선 둘 중 하나가 필요하다. 무한대의 재산 또는 무한대의 용기.
한 걸음 앞으로, 허공을 향해_Kawarau Bridge Bungy
- 변한 것은 뛰어야 한다는 사실 하나인데 빛, 소리, 공기,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다르게 느껴진다.
먼 미래를 듣는다는 것_Uluru 혹은 Ayers Rock
- 높이 348m, 둘레 9.4km인 세계에서 가장 큰 바위
체리의 뒷맛_Machu Picchu, 그 후
마약 커피_No Guilty Pleasure
- 문득, 내일 걸을 일이 꽤나 할 만하게 느껴진다.
거머리의 죽음_거머리 씨의 최후진술 중에서
날아가볼까, 산마루에 앉을까_The Girl from Gosainkund
Ritual_Deja Vu on the Road
-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가 끝나 가는 시간. 모퉁이의 낡은 술집을 하나 물색해 야 하는 시간.
두려움_히말라야, 불면의 풍경
당연함에 대하여_와오라니 족의 정장 착용법
- 옷은 젖으면 거추장스럽다. 질퍽이는 늪지대에서 전속력으로 달리는 페커리(남미의 멧돼지)를 따라잡으려면, 맨발이어야만 한다.
- 꼬메. 허리띠를 매듯 몸에 한 바퀴 두러 묶은 뒤, 성기를 배꼽 쪽으로 잡아당겨 그 끈 아래에 위치시킨다. 성기가 음낭의 품을 벗어나, 하늘을 보는 모습으로 고정되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이 모습이야말로 '의관을 정제한' 상태인 것이다.
-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당연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스와룹, 혹은 Self-image_Nijgadh의 라쇼몽
- 침묵이 빗물을 타고 차창을 따라 흘렀다.
-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은 솔직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 우리는 고통을 즐기도록 타고나지 않았다. 가급적이면 피하고, 미뤄두고, 회피할 수 있는 데까지 회피하는 것이 본성이다.
I’m Back_Tubing in Siphandon
- 그놈의 튜빙이라는 거, 튜브 타고 맥주 마시는 거, 나도 해보고 싶어서
Letter from 조연출_어느 오버하는 PD에 대한 소고
배가 고프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_라마단의 기억
- 아무리 해가 지고 나면 관에서 풀려난 뱀파이어 같은 기쁨을 만긱할 수 있다고 해도, 한 달 간 천국과 지옥이 매일같이 반복된다는 것은 번거롭기 그지없는 일이다. 게다가 신께서 천지를 일주일 만에 창조하신 것이 맞는지, 과일 하나 따먹은 죄로 인간 커플을 낙원에서 강제 퇴거 시키신 것이 사실인지 도통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중생에게는 이 모든 것이 그저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로 비치는 것이다. 특히나 이 기간동안 이슬람권에서 국가에서 일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낮 시간 동안 한없이 굼더지는 현지인들을 보며 복장이 터지기 십상이다. 한 달간 완전히 곡기를 끊는 것이면 모르되, 하루 중 두 끼를 금식하는 사람들의 외양은 그들이 겪는 고통을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그저 좀 어둡고, 우울하고, 행동이 느릴 뿐이다. 그래서 이방인에겐 비즈니스의 상대가 라마단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 은근한 짜증이 되기도 한다. 오후가 되면 눈에 띄게 표정이 어두워지는 아셉을 보며, '그럴 바엔 좀 먹으라고. 한 끼 먹는다고 지옥 가는 거 아니라고. 지옥은 그것ㅇ보다 훨씬 더 나쁜 짓을 한 녀석들로 이미 만원이라고!'라는 생각을 목에서 삼킨 것이 여러 번이다.
- 이틀을 굶으며 좀 더 나은 존재가 된 것 같진 않지만, 좀 더 겸손해진 것만큼은 사실인 것 같았다.
당신도 결국, ‘치노’_Caracas, 그리고 Seoul
- 아이러니컬하지만, 남미를 스페인의 손에서 해방시킨 시몬 볼리바르는 카라카스 출신이다. 그는 '크리오요Criollo', 즉 남미에서 태어난 백인이었다. 크리오요는 스페인에서 태어난 본토인들에게 2등 시민 취급을 당했다. 쥐뿔도 없는 것들이 태어난 장소를 들먹이며 그들을 하인 취급할 때, 볼리바르는 맞서 사우기로 결심했다. 1830년, 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가지 그는 스페인을 상대로 집요하게 투쟁했다. 남미 사람들은 지금도 그를 '엘 리베르타도르El Libertador'(해방자)라 부르며 추앙한다.
혼자 차린 식탁_힘센 바보를 상대하는 방법
밥값, 그놈의 밥값_Moonwalkers on Ollague
- '밥값'은 직업윤리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교육과정을 통해 근면성실을 최고의 가치로 삼게 된 우리는, 가능한 밥값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심지어는 고용주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밥값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은 마음의 부담이 되어 우리를 괴롭힌다.
Simple Life_‘빨래’라는 이름의 명상
어둠이 눈에 익을 때까지_Shiripuno의 키잡이
- 나는 도도한 죽음 위에 앉아 있다. 죽음은 축축하다. 무섭다. 눈물이 날 정도로 무섭다.
장식장을 비울 때_Potlatch on My Own
결코 효율적이지 않은_불량 탈것 예찬
- 오토바이는, 내연기관이 달린 탈것 중에서 이런 구식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물건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가기 위해서는, 그 사이의 모든 비와 바람을 직접 맞아야 한다. 모든 노면 상태를 감수해야 하고, 모든 냄새와 감촉과 소리에 직접 노출되어야 한다. 철저한 아날로그다.
Epilogue
- 여행이라는 것은 결국, 그물을 드리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거기엔 반드시, 무엇이든 걸려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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