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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TFLIX] 폭싹 속았수다 애순의 역사, 우리의 역사(3·15부정선거, 87대선, 서울올림픽, IMF)

by Whatever it is, it matters 2025. 3. 31.

 
 
 

폭싹 속았수다: 시대별 에피소드와 현대사의 연결

1960년대: 3·15 부정선거와 교육 현장의 부패

넷플릭스 다큐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초반에는 어린 오애순(애순이)이 학교에서 급장직을 잃고 어머니가 담임교사를 찾아가는 장면이 나오며, 교사 책상에 놓인 신문에서 “3·15 부정선거” 기사 제목이 보입니다.
이는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대한민국 제4대 정·부통령 선거의 부정을 가리키며, 당시 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부패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실제로 이승만 정권 아래에서 선거 부정은 일상적이었습니다.
 
경찰까지 동원되어 여당 후보의 득표를 돕고, 야당 후보에는 테러와 탄압이 자행되는 등 1960년 이전에도 공정하지 못한 선거가 반복되었습니다 (3.15부정선거<역사속으로<3.15부정선거<기획과 시행). 3·15 부정선거는 특히 내무장관 등이 사전에 철저히 계획하여 자행한 조직적 부정이었고, 투표함 바꿔치기, 유령 유권자 동원 같은 수법까지 동원되었죠.

이러한 부정 선거 소식은 교육 현장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애순이가 성적이나 리더십과 무관하게 반장 자리에서 밀려난 것은, 당대 학교에도 연줄이나 뇌물 등 부패한 관행이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실제로 당시 일부 교사는 학부모에게 금품을 받고 학생 서열을 매기는 등의 비리를 저지르기도 했고, 권력의 입김에 따라 학교 운영이 좌우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3·15 부정선거 직후 마산 등지에서 학생·시민들이 대대적 시위를 벌이며 “부정선거 무효”를 외쳤고, 이 과정에서 마산상고 3학년 김주열 군(17세)이 행방불명되었다가 눈에 최루탄이 박힌 시신으로 발견되는 충격적인 사건도 벌어졌습니다 (3.15부정선거 - 마산에서 시작된 혁명의 불길).
 
김주열 군의 죽음은 부정선거에 분노한 국민들의 불길에 기름을 부어, 한달 뒤 전국적인 민주항쟁인 4·19 혁명으로 폭발했습니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부정한 정권이 무너졌지만, 그 직후 5·16 군사쿠데타로 장면 내각이 붕괴되면서 민주주의의 봄은 짧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요컨대 애순의 어린 시절 배경인 1960년대 초반은 사회 지도층의 부정부패와 불의에 학생들과 시민이 저항하던 시기였습니다.
 
애순 가족이 겪는 작은 사건(급장직 박탈)도 이런 부조리한 시대상과 맞물려 있습니다. 애순의 반항적 성격은 아마 이처럼 불공정했던 환경에서 자라난 데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후 그녀가 평생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약자를 대변하는 삶을 살게 되는 밑바탕이 이 시기에 놓인 셈입니다.
 
 

1987년: 민주화 항쟁과 대통령 직선제 부활

중년이 된 오애순(문소리 분)은  “계장 선거”에 출마합니다. 이때 마당에 1987년 대통령선거 공식 벽보들이 붙어 있는 모습이 눈에 띄는데, 이는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그 결과로 얻어진 직선제 선거라는 시대 배경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1987년 6월 전국적인 민주화 시위의 압력으로 당시 전두환 정권은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였고, 같은 해 10월 개헌을 거쳐 12월 16일에 16년 만의 국민 직접 대통령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1987.11.16] 제 13대 대통령선거 · 1997 외환위기아카이브).
제13대 대선에는 군부 출신 여당 후보 노태우와 야권의 거물 김영삼, 김대중, 그리고 김종필 후보까지 4명이 경쟁했는데, 야권 표 분열로 노태우 후보가 36.6% 득표율로 승리했습니다.
 
이는 한국 헌정사상 최저 득표율 대통령 당선 기록으로,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에도 불구하고 신군부 정권이 5년 더 연장된 결과였습니다 ([1987.11.16] 제 13대 대통령선거 · 1997 외환위기아카이브). (선거 직전에 벌어진 KAL기 폭파 테러 등도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비록 기대와 달리 야권 정권 교체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직선제 부활 자체는 군사독재에 균열을 내고 향후 민주정부 수립의 토대를 마련한 큰 성취였습니다.

드라마 속 애순이 계장선거에 나서는 모습은, 이러한 민주화 시대의 변화를 배경으로 합니다.
 
1987년 이후 사회 곳곳에서 풀뿌리 민주주의가 확산되어 노동조합 지도부 선거, 직장 내 대표 선출, 동네 주민회 선거 등 작은 단위의 선거 문화도 활기를 띠게 되었습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상부 임명이 일상적이던 계장 자리도 투표로 뽑을 만큼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죠.
 
애순 역시 민주화 물결 속에서 주체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해보려 한 것입니다. 그녀가 평생 꿈꾸었던 “대통령”은 아니지만, 작은 공동체의 대표자에 도전하는 장면은 87년 민주화의 산물참여와 변화의 기운을 담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불의에 맞서 온 애순의 삶이 이 시기부터 사회의 인정을 받고, 그녀 스스로도 민주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나아가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명과 암 – 도시개발과 노점상 갈등

이듬해 1988년이 되면 애순은 서울 올림픽 준비로 인한 거리정화 사업에서 노점상들을 대표해 싸우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드라마에는 올림픽을 앞두고 거리 미화 명목으로 계장을 위시해 공무원들과 함께 애순과 이모들처럼 노점으로 생계를 잇는 사람들을 쫒아내려 합니다.
 
이에 애순은 클大자로 드러누워서 저항을 합니다. 저항하는 애순의 모습이 담겨, 국가 이벤트의 이면에 숨은 도시 빈민들의 고통을 보여줍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1988년 서울올림픽은 대한민국의 국제위상 제고와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한 영광의 사건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대규모 강제 철거와 정비사업의 그늘이 있었습니다 (How Olympic Redevelopment Erased South Korea's Past, Twice) (How Olympic Redevelopment Erased South Korea's Past, Twice).
 
전두환 군부정권은 서울올림픽을 “현대화”를 과시할 기회로 여겨 한강변 재조경, 고속도로 건설, 경기장 신축 등 광범위한 도시 개발을 추진했습니다 (How Olympic Redevelopment Erased South Korea's Past, Twice). 이 과정에서 낙후 지역의 빈민 주거지가 대거 철거되고, 거리 노점상, 노숙인, 행려병자들을 거리에서 쓸어내듯 단속했습니다 (2년간 14명 사망…올림픽으로 사람 잡은 나라 - 프레시안).

정부는 “도시 미관 정비”를 이유로 들었지만, 그 수법은 매우 폭력적이어서 1986년 한 해에만 철거 현장에서 5명이 사망했고 1986년부터 1988년 초까지 철거와정에서 14명이 목숨을 잃었을 정도였습니다 (2년간 14명 사망…올림픽으로 사람 잡은 나라).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는 “86, 88이 사람 잡는다”는 탄식이 나왔고, 올림픽을 명분으로 한 노점상 단속도 극에 달했음이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맞서 피눈물을 흘린 것은 다름 아닌 철거민과 영세 상인들이었습니다. 드라마에서 애순은 노점상 연합을 이끌며 구청과 맞서 싸우지만, 현실에서도 철거민 협의회전국노점상연합회 등이 조직되어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2년간 14명 사망…올림픽으로 사람 잡은 나라). 특히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직후 결성된 단체들은 명동성당 농성 등 연대투쟁을 벌이며 정부의 개발독주를 비판했습니다.
 
애순의 이러한 행보는 개인적 삶과 시대적 과제가 포개진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부정과 싸워온 그녀는 올림픽이라는 국가적 축제가 열리는 순간에도 소외된 이들의 편에 서서 정의를 외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압축성장 시대의 그늘에서 고통받은 민초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이자,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된 사회모순에 맞선 시민 저항의 의미를 띱니다. 올림픽의 환호 뒤편에서 눈물짓는 사람들을 조명함으로써, 애순의 서사는 한국 현대사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포용하는 깊이를 갖게 됩니다.
 
 

1990년대: 과외 금지 시대의 교육열과 ‘대리시험’ 사건

1990년대 에피소드에서는 사교육 문제가 언급됩니다. 드라마 속 한 장면에는 부유층 학부모가 자녀 대신 대리시험을 금명이에게 요구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이는 90년대 한국 교육 현실의 어두운 단면을 반영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사교육인 과외가 불법이었습니다.
 
1980년 7월 전두환 정권이 교육 평준화를 명분으로 모든 입시 과외를 금지했고, 이 조치는 20년 간 유지되어 2000년 4월 27일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릴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과외교육 전면 허용 - 연합뉴스).
 
과외 금지 정책은 공식적으로는 교육 양극화를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 현실에서는 부모들의 교육열을 억누르지 못했고 오히려 지하경제를 형성시켰습니다. 법망을 피한 은밀한 과외, 일명 ‘검은 과외’가 성행하면서 과외비는 폭등하고, 돈 있는 집만 몰래 과외를 시키는 불공정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런 왜곡된 상황에서 일부는 시험 자체를 대리응시시키는 범죄까지 저질렀습니다. 실제로 1992년~1993년 대학입시에서 입시브로커들이 대학생들을 매수해 수험생 대신 시험을 치르게 한 사건이 적발되어 큰 파문이 일었습니다. 1993년 1월 서울 경찰청 수사 결과, 브로커로부터 대리시험을 알선받은 학부모들이 3천만~1억5천만 원에 달하는 돈을 건넨 사실이 드러났고, 현직 교사까지 연루되어 부모 3명, 브로커 6명, 시험 대리로 나선 대학생 3명 등 12명이 구속되었습니다 (대학입시 대리시험 파문 | 연합뉴스).
 
적발된 사례만 한양대, 덕성여대 등 수십 건에 이르렀고,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렇듯 과외가 불법이던 시절에는 겉으로는 “사교육 없는 평등사회”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돈과 편법이 판치는 교육 현실이 전개된 것입니다. 드라마에서 묘사된 대리시험 에피소드는 이러한 시대상을 정확히 짚어줍니다.
 
애순의 시대가 거리에서 민주와 정의를 외쳤다면, 금명의 시대는 입시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 다른 불의와 마주한 것입니다.
애순의 가족이 대리시험 사건을 겪으며 느꼈을 충격과 좌절은, 당시 많은 양심적인 부모들과 학생들이 느꼈던 박탈감과 닮아 있습니다. 한편 199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김대중 정부 출범과 함께 교육 자유화 움직임이 일어나 2000년에 과외 금지 조치가 풀리지만, 그때까지 한국의 입시 경쟁은 부정행위까지 부르는 극한 경쟁으로 치달았습니다.
 
애순의 개인사 속 이 대목은, 산업화·민주화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은 교육 불평등과 입시 지옥이라는 한국 사회의 숙제를 상기시킵니다. 이를 통해 드라마는 애순 일가의 세대 간 고통까지 아우르며, 현대사회의 모순을 섬세하게 짚어냅니다.
 

1997년: IMF 외환위기와 대량 해고의 충격

서울대를 나왔지만 양금명은 IMF한파에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 통지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금명은 명문 서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대우전자에 입사한 엘리트였지만, 한순간에 실직자로 전락합니다.
이는 1997년 IMF 경제위기 시기 대한민국이 겪은 대량 해고 사태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1997년 말 태국에서 시작된 아시아 금융위기가 한국을 강타하여, 한국은 12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됩니다. 그 결과 1998년 한국 경제는 -6.7% 역성장이라는 전대미문의 침체를 기록했고, 많은 국민들은 이를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국가적 위기이자 국치(國恥)로 받아들였습니다 (Korean Crisis and Recovery).
 
IMF 구제조건에 따라 기업들은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을 단행했고, 연쇄 도산도 이어졌습니다. 그 여파로 불과 몇 달 새 실업자가 100만 명 이상 급증해, 1998년 5월에는 실업률이 7%대까지 치솟았습니다 (Korean Crisis and Recovery) (Mitigating the Social Costs of the Asian Crisis). 이는 위기 전인 1997년의 실업률(2%대)과 비교하면 3배에 달하는 수준으로, 가장 잘나가던 대졸자들조차 취업문이 닫히거나 직장을 잃는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실제 1997~98년에 쏟아져 나온 신조어만 봐도 IMF 실직자, 명예퇴직, 구조조정(리스트럭처링) 등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직장을 잃은 가장들이 길거리 시위에 나서거나 택시 운전, 행상으로 생계를 잇고, 청년들은 졸업을 유예하거나 해외로 떠나는 일이 속출했습니다.
 
대우그룹은 금명의 사례처럼 IMF 위기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한때 재계 2위까지 올랐던 대우그룹은 무리한 사업 확장과 과도한 부채로 위기설이 돌다가, IMF 시기 부채비율이 600%에 달하며 결국 1999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 사실상 해체되었습니다 ([오늘의 역사] 1999년 11월 1일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사퇴 - 매일신문).

 
이로써 “대마불사(大馬不死)”, 즉 큰 기업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도 깨졌습니다 ([오늘의 역사] 1999년 11월 1일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사퇴 - 매일신문). 드라마에서 금명이 다닌 대우전자가 문을 닫으며 그녀가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는 모습은, 당시 수많은 대우 직원들과 가장들이 겪었던 현실 그 자체입니다. 취직만 하면 평생이 보장될 것 같던 종신고용의 신화가 무너지고, 능력과 노력을 겸비한 개인도 거대한 경제 파고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해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금명은 부모 세대가 일궈놓은 경제성장의 혜택을 받으며 자랐지만, 성인이 되자마자 국가 부도의 파고에 직면한 IMF 세대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애순과 그 가족의 개인적 서사는 곧 한국 현대사의 굴곡 그 자체입니다. 애순은 격변의 1960년대에 부정한 권력에 눈떴고, 1980년대 민주화기에는 민중의 한 사람으로 역사의 전면에 뛰어들었으며, 산업화·올림픽 시대에는 개발독재의 그늘과 맞섰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자식 세대가 겪은 새로운 종류의 좌절(입시 경쟁, IMF 실직)을 함께 경험하며 세대의 아픔을 끌어안았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폭싹 속았수다 속 인물들의 삶은 한국 현대사의 압축적인 축소판입니다.
 
격동의 역사 한복판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꿈과 좌절, 투쟁과 성장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애순 일가의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죠. 드라마는 벽보 한 장, 신문 헤드라인 하나까지도 실제 역사와 정교하게 연결하여, 허구의 캐릭터에 현실의 무게를 실었습니다. 그 결과 애순과 주변 인물들의 선택과 눈물이 한국 근현대사의 맥락 속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띠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일생이 곧 시대의 이야기로 승화된 것으로, 이는 감독이 말한대로 이 작품이 조부모 세대에 바치는 헌사이자 동시에 그 시절을 살아낸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가 되는 이유입니다 (폭싹 속았수다 l 박보검, 다큐를 드라마로 만든 유니콘).
 
 
참고 자료: 한국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국가기록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사료관, 프레시안 보도, 연합뉴스 기사, IMF 통계 보고서 등. (3.15부정선거 - 마산에서 시작된 혁명의 불길) ([1987.11.16] 제 13대 대통령선거 · 1997 외환위기아카이브) (2년간 14명 사망…올림픽으로 사람 잡은 나라) (대학입시 대리시험 파문 | 연합뉴스) (Korean Crisis and Recov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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