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견문록
독서일: 2017/05/23 오후 4:29
비고: 2017년 5월 23일 오후 4:29
작가: 임홍재
출판사: 김영사
추천사-서로에 대한 이해, 공감과 배려는 지속가능한 관계의 핵심이다
사랑과 관심으로 베트남인들의 마음을 얻다
프롤로그-21세기 블루오션 베트남의 어제, 오늘, 내일을 읽다
- 베트남은 북에는 중국, 서쪽은 고산준령, 동쪽은 바다를 접하고 있어서 뻗어갈 수 있는 곳은 남쪽밖에 없었다. 홍강에서 메콩강가지 확장하는데 800년이 걸렸는데 이를 베트남의 북거남진의 역사라고 부른다.
**1 베트남, 너는 내 운명**
첫눈에 반한 베트남 / 베트남은 어떤 나라인가 / 한국과 베트남은 한 문화다 / 누가 베트남을 저개발국가라 말하는가 /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나라 / 버블이 꺼진 자리에 베트남이 들어서다 / 베트남이 또 다른 중국이 될 수 있을까? / 베트남에 승부를 걸어라
- 베트남은 2001년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시장경제체제 채택을 선언하였다. 2006년에 들엇서는 사기업의 활동을 허용하고 투자법 개정, FTA확대의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2007년 1월 세계무역기구에 정식으로 가입하는 등 시장경제체제를 확립해가고 있다.
- 베트남은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연평균 7.2퍼센트의 경제성장을 달성하였다. 2008년도 말 1인당 국민 소득이 1,000불을 넘어서서 저소득 국가에서 중소득 국가로 진입하였다. 1993년 인구의 58퍼센트가 빈곤 상태였으나, 2008년 14.5퍼센트로 떨어졌다.
- 베트남은 전통적으로 교육열이 매우 높다. 이미 1076년 최초의 국립대학인 국자감을 설립했는데 이는 서양보다 200년 앞선다. 호찌민도 십년대계로 나무를 심고 백년대계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며 전쟁 기간 중에도 국비 유학생을 외국으로 보내 교육시켰다. 15세 이상 베트남 국민의 94퍼센트가 문자를 해독할 수 있다.
- 베트남어로 '변경한다'는 뜻의 '도이(dổi)'와 '새롭게'라는 의미의 '머이(mới)[1]가 합쳐진 용어로 '**쇄신**'을 뜻한다. 1986년 베트남 공산당 제6차 대회에서 제기된 개혁ㆍ개방 정책 슬로건이다. 공산당 일당 지배 체제를 유지하면서 사회주의적 경제발전을 지향하게 된 시발점이다.(나무위키)
**2 한반도와 인도차이나의 멀고도 가까운 거리**
한국-베트남 질긴 인연 / 길지 않은 시간에 쌓은 만리장성 / 외교의 최전선에서 만난 베트남 / 우리는 친구이자 사돈이다 / 좋을 때 잘하자 / 백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 동반자 관계 / 베트남 신부를 사랑하지 않으면 베트남을 사랑할 수 없다
- '한꿕', 베트남 사람들의 이 단어 발음은 처음 듣는데도 바로 '한국'으로 들린다. 중국어의 '한꾸어'나 일본어의 '간꼬구'보다 훨씬 '한국'을 우리처럼 발음한다. 한국이란 단어의 발음을 우리나라 발음에 가장 가깝게 하는 외국어는 베트남어일 것이다.
- 한국과 베트남은 1992년 수교를 통해 관계를 회복하였다.
- 2009년말 현재 베트남 11개 대학교가 한국학 전공을 개설하여 약 2,200여 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 한국에는 약 9만 여 명의 베트남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국제결혼해서 한국으로 이주해온 베트남 여성들이 3만 7천 여 명이고(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근로자가 약 4만 명, 유학생이 5천 여 명, 기타 등으로 분류된다.
- 또 9만 여 명의 한국인들이 베트남으로 가서 그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3 베트남의 뿌리를 찾아서**
용을 숭배하는 나라 / 베트남의 혼 / 정신적, 예술적 전통의 보고, 촌락 / 베트남 문화의 세 측면
- 베트남의 전통에서 또 하나 현상은 안팎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데 중요성을 부여해왔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54개 민족으로 구성되었으며, 해안선이 3,200여 킬로미터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산악지대, 동쪽으로는 바다를 접하고 있다. 이처럼 취약한 지정학적 여건 때문에 조직화되고 통합된 대응이 필요했으며, 나라 사랑, 조상 숭배, 외부 침략 거부, 생사 초월 투쟁 등의 특성이 형성되었다.
- 촌락 자치. "왕의 명령보다도 촌락의 관습이 우선한다." "왕의 칙령도 촌락 문 입구에서 멈춘다" 촌락은 대나무 생울타리로 경계가 지어져 있다. '죽의 장막'으로 촌락의 울타리를 이루고 보호해준다. 이를 '대나무 울타리 심리'라고 부른다. 모든 것이 촌락에서 이루어지며 촌락 구성원의 동의가 있을 때 합의가 가능하다.
- 빈랑 나무 잎과 열매를 씹으면 혈액 순환이 활발해지고 눈이 빛나며 혈색이 좋아지며 입술이 더 붉어진다. 전통 의학에서는 빈랑 나무가 살균 기능이 있고 악취를 제거해주고, 충치와 류머티즘을 예방하며 위통을 완화시켜주며, 고약으로도 쓰이고 여드름을 없앤다. 빈랑 나무는 마리화나나 대마초와 유사하며, 제단에 올려놓는 제물 중 하나이다. 베트남에서는 손님이 오면 빈랑 나무와 차를 대접한다. 빈랑 나무를 씹는 것은 대화의 시작을 뜻한다. 빈랑 나무는 윗사람에게 줄때는 존경을 뜻하고 결혼식이나 장례식 참석자에게 줄 때는 감사를 뜻한다. 요즘 빈랑 나무를 씹는 사람은 줄었지만 이 관습은 베트남의 문화 예식으로 남아있다.
**4 베트남을 움직이는 두 가지 힘**
박 호, 그는 누구인가? / 호찌민 시대가 열리다 / 호찌민은 공산주의자인가, 민족주의자인가 / 지압 장군과 디엔비엔푸 전투 / 역사적 랑데부
- 베트남 사람들의 호찌민 주석에 대한 사랑은 깊고 끝이 없다. 사실 베트남 사람들은 호찌민 주석을 주석이나 국부라고 부르지 않고 "박호(Bac Ho, 호찌만 큰아버지)"라고 부른다. 호찌민 주석을 권위나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가까이서 친절하게 대해주는 큰아버지 또는 아저씨 같은 사람으로 사랑하고 있다.
- 호찌민 주석과 김구 주석은 민족 해방과 독립을 위해 생애를 바친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호찌민에게 애국, 독립, 자유가 사상이었고 행동의 기본이었다. 그는 독립과 자유보다 귀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김구도 첫째 소원도 독립이요, 둘째 소원도 독립이요, 셋째 소원도 독립이라고 말하였다. 김구는 자신의 정치 소신은 한마디로 마랗면 자유라고 말했다. 두 지도자의 사상은 정확히 일치한다.
- 독립을 선언한 베트남민주공화국은 1946년 1월 총선을 실시하고 3월 국회를 개원하여 호찜니을 주석으로 선출하였다.
**5 또 한 번의 전쟁, 그리고 통일 시대**
기나긴 전쟁의 서막 / 베트남 전쟁 혹은 미국 전쟁 그리고 월남 전쟁 / 베트남의 통일 / 충격의 형제간 전쟁 / 통일 시대의 시장과 지도체제
**6 메콩 지역의 허브, 수도 하노이의 천년**
리타이또 천도 칙령문 / 역사가 살아 숨쉬는 하노이, 호안끼엠과 호찌민 / 탕롱-하노이 천년을 기념하며
- 하노이는 베트남의 수도이며 인구 640만 명이 살고 있다. 1평방 킬로미터당 1,913명이 거주하고 인구 밀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2008년도 베트남 정부 결정으로 하노이 시는 원래의 927.3제곱 킬로미터(서울: 605제곱킬로미터)에서 3,344.7제곱킬로미터(334.47헤타르)로 확장되었다.
- 홍강은 하노이 시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다. 베트남을 흐르는 홍강의 강줄기는 480킬로미터이며 하노이 구간은 42킬로미터이다.
- 하노이의 최근 150년 역사는 80년에 걸친 프랑스 식민 통치, 4년의 일본 점령기, 8년의 프랑스와 전쟁, 20년의 남북대결, 10년의 미국과 전쟁, 통일, 그리고 1986년 이후 25년의 개방과 국제사회의 통합의 과정을 목격하였다.
**7 베트남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무엇인가**
베트남 사람들은 무엇을 믿는가 / 한 낱말이 여섯 개의 뜻을 갖는 베트남어 / 인식의 바탕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 강줄기처럼 부드러운 베트남 사람들 / 베트남인과 협상
- 베트남인들은 조상, 가족, 촌락, 영웅 등을 숭상하는 토착 신앙을 믿고 있으며, 바위나 나무에도 신, 귀신이 있다고 믿고 있다.
- 베트남은 불교의 나라로 불교 신자가 전 국민의 3분의 2는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 "백 개의 이유도 조금의 정서에 미치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감성을 중시한다.
- 베트남 사람들은 체면을 중시한다. 공동체 의식이 강한 베트남 사람들은 체면 손상은 치명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서양 사람들은 타협을 합의에 이르는 중요한 과정으로 보는 데 반해 베트남 사람들은 타협은 자기의 취약을 드러내는 일로 체면을 손상시킨다고 보고 있다. 다만 타협은 상대를 패배시키는 대전략의 일환으로만 이용한다. 한편, 베트남인들은 자기 체면도 중시하지만 상대의 체며도 중시한다.
**8 베트남의 숨은 매력**
역사와 문화가 숨쉬는 도시와 지방 / 웰빙의 베트남 음식 / 신이 내려준 선물
- 북부는 하노이와 베트남 문명의 요람인 홍강, 중부는 우리의 경주에 해당하는 왕도 후에, 16세기 국제 무역항 호이안, 프랑스와 미국의 베트남 진입 항구 다낭, 월맹과 월남의 분단 시절 군사분계선이 있고, 남부는 호찌민, 메콩 델타가 주요 지역이다.
- 1,533제곱 킬로미터의 넓이에 2,000여 개의 섬이 장관을 만들어내는 하롱베이는 용이 내려앉은 곳(下龍)이라고 한다.
- 남딘성(Nam Dinh Province): 하노이에서 동남쪽으로 9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남딘 성은 인구가 200만 명, 면적은 1,600제곱킬로미터이며, 노동 인력이 풍부하고 건강 및 위생 수준도 높다. 베트남 교육의 허브로서 교육 수준이 매우 높아 문학, 정치, 군사 및 외교 분야에서 역사적으로 걸출한 인물을 많이 배출해왔다. 프랑스 식민 시절 최대의 직물 공장이 있던 곳인데, 현재까지도 직물, 섬유 산업의 중심지이고, 양질의 찹쌀과 소금의 생산지로 알려져 있다.
- 남딘 성은 외국인 투자가에게 매력적인 곳 중 하나다. 하노이 및 하이퐁과 모두 각각 2시간 이내의 도로 수송 거리에 있고, 하노이-호찌민 간 철도가 지나갈 뿐만 아니라 강을 통한 수로 수송(현재는 수천 톤 규모)도 가능하다. 또 남딘 성은 투자자가 원하는 가장 적합한 부지에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토지 보상 절차를 간결화하여 인민위원회가 직접 처리토록 하고 투자 허가절차도 원스톱 서비스를 도입하여 간소화하였다.
- 호찌민(Ho Chi Minh): 호찌민 시는 베트남 제일의 도시다. 베트남이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을 때는 월남의 수도였다. 1986년 도이머이 정책으로 개방을 추진한 이후 가장 번성하고 있는 도시이다. 호찌민 시 지역은 원래 습지대였고 캄보디아의 지배하에 있었다. 캄보디아 왕국이 타이와의 전쟁으로 약해져서 이 지역에 대한 통치력이 약해지고, 베트남인들의 이주가 급증하자 서서히 베트남화 되어갔다. 토착민들은 "사이공(Sai Gon)"으로 불렀다.
- 1859년 프랑스에 의하여 정복 이후, 전통 서양식 건축양식을 반영한 건물들이 남아있다. 통일된 후인 1976년 7월부터 호찌민 주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호찌민 시로 변경되었다. 인구 700만이 넘는 베트남 내 도시로 경제 수준도 베트남 전체 평균을 두 배 이상 넘는다. 호찌민 시는 베트남 외국인 투자 전체의 17퍼센트를 차지하여 베트남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 퍼(Pho)는 쌀국수, 가늘게 썬 쇠고기, 양파, 향초, 양념이 주원료이다. 퍼 요리 방법은 소뼈를 5시간 이상 가마솥에 넣고 펄펄 끓여 국물을 내고 적당량의 가느다란 쌀국수를 큰 그릇에 넣고 그 위에 이미 끓여놓은 쇠고기나 닭고기, 얇게 썬 양파, 파 등을 함께 넣는다. 이를 퍼 육수와 섞는데, 육수는 고기, 골이 들어 잇는 정강이뼈, 말린 새우 등을 넣고 펄펄 끓인 다음 생각, 느억맘으로 맛을 낸다. 먹을 때 레몬 주스, 식초, 얇게 썬 빨간 고추, 후추 가루 등을 추가해서 먹기도 한다.
- 분차(Bun Cha): 북베트남에서 먼저 생긴 음식으로, 주로 점심 메뉴이다. 양념된 돼지고기를 불에 구워 각종 야채, 신선한 향초, 쌀국수와 함께 새콤한 맛이 나는 수프인 능거참(Nuor Cham)을 담가 먹는다.
- 느억맘(Nuoc Mam): 발효식품 느억맘은 한국의 액젓과 비슷하다. 생선을 발효시켜 만든 소스로 영양가가 있고 베트남 요리에서 소금 대신 사용된다. 판띠뎃Phan Tiet, 푹꿕Phuc Quoc 섬에서 생산되는 느억맘이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 넴잔(Nem Ran): 다진 고기 튀김인 이 요리는 언뜻 보기에 중국식 춘권과 비슷하지만, 얇은 쌀 종이피를 사용하기 때문에 더욱 바삭하다.
- 짜까(Cha Ca): 하노이의 도안(Doan)가족이 100년 전에 처음 발명했다는 요리로, 엄청난 인기 덕에 이 가족의 음식점이 있는 길을 아예 '짜까 거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이 짜까 거리는 구시가에 있다. 짜까는 민물 생선을 딜dill 풀을 얹은 기름 판에 직접 튀겨먹는 북베트남 요리이다. 땅콩과 고추를 띄운 느억맘에 찍어 먹는다.
- 비아허이(Bia Hoi): 생맥주로 대개 카페의 길거리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마시며 현지인을 부담 없이 만나기에 가장 좋은 음료이다. 한 잔에 우리 돈으로 4백 원 정도다.
**9 베트남의 외교 전략**
베트남의 전통 외교 / 호찌민의 외교 사상
- 조화, 탄력, 수용
- 평화애호
- 민족 자존심
- 호찌민의 외교사상: 마르크스-레닌주의. 원칙은 확고히, 정책은 탄력적으로 firm in principles, but flexible in policies
에필로그 베트남의 미래와 대한민국의 공생 관계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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