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보모음/문화, 영화, 책

[독서] 뭐라도 될 줄 알았지_이재익, 이승훈, 김훈종(씨네타운나인틴)

by Whatever it is, it matters 2020. 12. 13.

 

 

뭐라도 될 줄 알았지 - 교보문고

10대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20대엔 열심히 스펙을 쌓아 취직을 하고, 30대쯤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야 하며, 40대가 되면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 어린 시절 방학 생활계획표를 짤 때

www.kyobobook.co.kr

이재익의 수업시간

"이쯤에서 성적긴장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삶의 생기를 불어넣는 가장 큰 힘 중의 하나로 성적긴장감을 꼽는다.

보통 성적긴장감이라는 말을 들으면 '혹시 남녀 사이에 무슨 일을 벌일 것 같은 기운'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 잘생각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성적긴장감은 바로 그거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매우 중요하다. 가능성이 1퍼센트라도 이있는 것과 아예 없는 것은 천지 차이.

가능성이 있는 삶과 가능성이 없는 삶, 어느 쪽이 생기 있겠는가?"

 

    ㅋㅋㅋ 처음부터 빵터졌습니다. 이재익 피디 캐릭터가 글에서도 정확하게 묻어나오네요 ㅎㅎ

 

 

"그 사건으로 나는 또 하나의 못된 요령을 배웠다. 어느 조직이든 나를 관리하는 관리자가 있는데, 관리자와의 돈독한 관계가 업무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

 

    이후 '언젠가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말을 하지만... 설득력이 없...ㅋㅋㅋㅋ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사라오는 내내 이런 숫자놀음을 즐겨왔다. 등수놀이의 앞자리에 속한다는 사실이 내게 매우 강렬한 세속적 쾌감을 선사했다. 우월감, 안도감, 자부심, 승리의 기쁨 등등 다양한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드는 쾌감이었으리리라."

 

  세속적 쾌감. 이런 솔직한 표현은 이재익PD님에게서만 자주 들리는 소리라 오히려 신선합니다.

 

"먼저 우리가 종종 혼동하는 세 가지 개념을 짚고 넘어가자. 도덕, 상식, 법. 이 세가지 개념이 어떻게 다른지 불륜을 예로 들어보겠다. 기혼자가 배우자 외에 다른 이성과 연애를 하면 비난을 받는다. 도덕에 반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륜의 대상이 자기 배우자보다 더 못생기고 나이도 많고 성격도 좋지 않은 사람이라면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한다. 상식에 반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여자와 다투다가 폭력을 행사하면 고소를 당할 수도 잇다. 법을 어기는 것이다."

 

  ㅋㅋㅋㅋ 불륜으로 도덕/상식/법을 설명하는 센스 ㅋㅋㅋㅋ

 

 

이승훈의 수업시간

 

"나는 왜 이렇게 말이 많은 걸까? 고민했다. 사실 고민하지는 않았다. 말 좀 많을 수도 있지. 무러 그런 걸 고민하나. 그 시간에 한마디라도 더하는게 낫지. 인생은 짧고 할 말은 많은데. 다만 말을 좀 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이왕 말이 많은 거 잘 하기라도 하면 좋지 않을까? 친구들과 모여서 놀 때 유쾌하게 말하거나 논쟁을 벌일 때 논리정연하게 말하거나 다수의 사람들을 상대로 유창하게 말하면 멋있으니까."

 

    씨네타운나인틴을 들으면서 말이 많다고 느낀 적보다는 말이 길다고 느낀 적은 있었는데, 자기 고백부터 글을 시작하네요.

    그리고 말 많고 잘하는 남자, 신해철의 이야기를 하는데 본인의 인생에서 정말 대단한 사건이었나 봅니다.

    항상 신해철에 대한 추억이 이승훈 PD를 감싸고 있네요. 도시인이라는 시대를 앞서간 노래 가사를 겻들이며..

    그러고 보면, 이재익PD는 참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고, 이승훈PD는 자기주변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김훈종PD는 남의 이야기를 많이 하네요ㅋㅋ

"그와 나는 정말 병신 같은 소리만 했다. 어디 쓰려고 해도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소리를 낄낄거리면서 주고받았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나는 세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특별한 국어수업을 들었다."

"'아, 오늘은 참 할 말이 없다'며 술이나 마시러 가자고 했다. 나는 모자란 방송 분량을 노래로 채워넣고 욕에 '삐'처리를 하며 편집을 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그렇게 녹음한 내용이 참 들을 만하다는 거다. ... . 똑같은 얘기를 해도 형이 하는 얘기는 무언가 좀 달랐다."

 

"첨단 금융 기법이니 파생 상품이니 하는 어려운 말들로 마치 대단한 비밀과 복잡한 구조가 있다는 듯 말하지만 정작 큰일이 터지면 우리가 알게 되는 건 그들도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첨단 금융, 선진 금융은 알 수 없다는 말과 동의어다."

 

  저도 이런 느낌이에요. 자기들도 모르면서 상품을 파는 세상이 되었는데, 거기다가 금융상품은 진짜...

 

"사람은 돈이 있어야 힘이 나는 거야."

정말 맞는 말이다. 가난은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불편한 일이다. 가난하지 않을 수 있다면 가난하지 않는 편이 좋다. 수입을 늘리는 방법이 됐건, 지출을 줄이는 방법이 됐건.

 

"나는 평생 여자를 사귈 수 없으며, 나를 좋아하는 여성은 엄마외엔 있을 수 없다고 믿었다."

 

   ㅠㅠ  

 

"유창하게 무식한 사람보다는 그냥 무식한 사람이 차라리 낫다. 그냥 무식한 사람은 자신들이 모른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영어는 필요한 사람들만 공부하면 된다. 지금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은 완전히 사회적, 국가적 낭비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대학에 가기 위해 취업하기 위해,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말이다."

 

"책을 같이 쓴 재익이 형은 아직도 나에게 '야 이 새끼야. 똑바로 좀 살아'라고 말하고, 훈종이도 '승훈아 제발 정신 좀 차려'라고 충고한다. 마흔 살이 넘어 이런 소리들을 듣고 산다는 건 절대 쉬운일이 아니다. 에헴."

 

 

김훈종의 수업시간

 

"'강동구 어디 살았냐'라는 디테일한 질문이 들어오면, 어느 자리든 나는 '명일동 주민'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면 십중팔구 '명일동이 어디냐'고 묻는다. 나는 '천호동 근처'라고 답한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수십 번 거쳐도, 내 답변은 바뀌지 않는다. 그냥 처음부터 '천호동 살았어요'하면 될 것을. 나도 모르게 '천호동'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잘 내지 않는다."

 

"내 짝궁 '슈퍼맨'은 공교롭게도 슈퍼마켓 집 아들이었다. 학교에 오면 아침부터 어제 먹은 과제 얘기만 줄기차게 해댔다. '오징어땅콩 과자에서 땅콩 함량이 줄었다'거나 '죠스바의 딸기 맛 부분이 미세하게나마 늘어났다'는 등의 날카로운 과자 비평이 이어졌다."

   

   과자에 대한 관심이 계속 이어졌으면 어떤 분이 되었을까요? 저 친구분은 ㅋㅋ

 

 

"나는 라디오 PD다. '라디오 PD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무엇인가?' 누가 묻는다면 한마디로 음악 고르는 일이라고 답한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대개 모든 일이 그러하듯 실로 다층적이다. 프로그램을 새로 만들려면 우선 진행자부터 섭외해야 한다. 사실 라디오는 DJ 놀음이다. 디스크자키, 즉 음반을 다루는 사람이란 말이 무색하게도 요즘 DJ들은 음악을 직접 고르거나 걸지 않는다. 대체로 PD가 선곡하고 엔지니어가 디지털로 노래를 튼다. 그러니 진행자 혹은 MC가 적확한 표현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DJ란 호칭이 정겹다."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음반 자료실에서 CD를 찾아 음악을 틀었다. 날씨와 사연에 맞는 명곡의 데이터베이스를 머릿속에 많이 저장한 PD가 좋은 라디오 PC였다. 그런데 요즘은 인터넷 기반의 음반 프로그램이 있어서, 제목으로 가수로, 심지어 가사로도 검색이 가능하다(SBS라디오의 경우에는 뮤직뱅크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음악 선곡만으로는 더이상 승부를 볼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확실히 예전에는 머릿속의 지식의 양으로 승부했지만, 요즘은 전 국민이 '큐레이팅'능력으로 먹고 사는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훈종PD의 추천곡인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은 이번에 처음 들었는데 확실히 위로가 되네요.

 

"<Piano Man>이란 노래는 또 어떤가! 오일쇼크의 한파가 몰아치던 70년대 뉴욕 브롱스 거리는 직업을 잃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기에 더해 무명의 작가, 배우, 가수 들이 허름한 바에 하나둘 모여 싸구려 럼주 한 잔에 시름을 달랜다. 그때 저 멀리서 울려 퍼지는 위로의 노래가 바로 피.아.노.맨.이다. 이노래를 통해 나는 뉴욕에서 일도 하고 거주도 하는 사람과 뉴욕에서 일만 하는 사람, 세상이 그렇게 나뉘어 굴러간다는 냉엄한 현실을 일찍이 배웠다."

 

 

"이재익, 이승훈 PD 그리고 나. 우리 셋은 2012년 5월부터 지난 5년 동안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매주 만나 서너 시간씩, 세상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워섬겼다.

40여 년의 인생 경험과 가치관을 함께 나눈 재익이 형과 승훈이는 본의 아니게 내 인생의 앙투라지가 되어버렸다. 장구 신동이던 어린 시절, 부잣집 아들에서 하루아침에 노숙자 신세가 된 신산한 고생담, 숫자에 연연하던 학창 시절, 누군가의 영어선생이 되어야 했던 군대 무용담까지. 우리는 그야말로 오만 가지 경험을 다 나눴다."

 

   저는 이게 제일 부러웠어요. ㅎㅎ 쓸데없는 소리를 매주 할 수 있는 벗이 생긴거잖아요 ㅎㅎ 아무튼 책도 재밌고, 방송도 참 재밌게 듣고 있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