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줌인 러시아
독서일: 2020/07/26
비고: 2020년 7월 26일 오후 1:33
작가: 이대식
출판사: 삼성경제연구소
1부 ‘진짜 러시아’를 보여주는 아홉가지 키워드
- 솔로몬은 작은 몸으로 거인 골리앗을 잡은 것으로 유명한 성서 속 영웅 다윗의 아들이다. 따라서 그의 풀네임은 솔로몬 벤 다윗Solomon ben David이다.
- 2004년 9월 푸틴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크렘린으로 초청했을 때 만찬장에서 실내악단이 <아침이슬>을 연주해 감동을 주었듯 우리 고위 관료들도 러시아 관료들을 호칭할 때 이름과 부칭을 사용한다면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2012년 대통령 3선에 성공한 푸틴은 이름이 '블라디미르Vladimir'인데 아버지의 이름도 '블라디미르'다. 따라서 그를 만났을 때는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라고 부르면 된다.
- 러시아인들은 아주 친한 사람들 간에는 이름을 더 짧게 혹은 귀엽게 만든 애칭을 사용한다.
- 러시아어로 아름답다는 말이 바로 '끄라시바야krasivaya'이다. 그런데 이 '끄라시바야'라는 말은 단순한 형용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 문화의 정수를 이해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 붉은 광장red square이라는 표현은 '아름다운'이라는 의미의 러시아 엣말을 잘못 번역했기 때문에 탄생한 표현이다. 붉은광장이란 말에 '붉은'이라는 형용사는 러시아어 '끄라스나야'를 번역한 것이다. 이 형용사는 지금은 '붉은'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이 광장의 이름으로 붙여질 당시만 해도 '붉은'이라는 뜻이 아니라 '아름다운'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 2010년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약 40$를 장악했던 노키아 사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무려 45% 이상이 붉은 색을 선호하는 것으로 파악되었고 러시아 통신 전문 포털 사이트에서는 붉은색 핸드폰이 러시아 여성들 사이에서 '압도적 인기를 누린다'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부 러시아인, 러시아 민족이 사는 법
- '고맙다'를 뜻하는 '쓰빠씨바'는 "구하소서(스파시)" (당신을) "신이여(바)"라는 축복의 말이다. 유럽에서 감사하다는 말에 '신'이 직접 언급되는 유일한 경우로 꼽힐 정도로 러시아어는 매우 종교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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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비잔틴 제국은 476년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동프랑크와 서프랑크 등으로 분열되어 힘이 약화된 서유럽과 달리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고 지리적으로도 러시아와 가까워 중요한 교역국이었다. 블라디미르 대공은 이 강력한 제국과의 연대를 굳건히 하고자 비잔틴 제국의 공주 안나와 결혼하셤ㄴ서 그리스 정교도 함께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렇게 받아들인 그리스 정교는 러시아 정교로 토착화되어 1453년 비잔틴 제국이 멸망한 뒤에도 지금까지 천 년이 넘도록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 아름다운 러시아 성가가 일반 음악이나 다른 교회음악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아카펠라, 즉 무반주 음악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러시아 정교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는 요소이기도 하다.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불완전한 인간의 제2차 창조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인간이 만들어낸 악기의 개입 없이 신이 직접 창조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성한 소리인 인간의 목소리로만 신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천주교회나 개신교회에서 듣게 되는 오르간이나 피아노 소리가 러시아 정교에서는 있을 수 없다.
- 천주교에서는 성모 마리아가 잉태된 순간에 '원죄사함'을 받아 '원죄 없는 잉태(무염시태)'를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러시아 정교에서는 성모 마리아 역시 다른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잉태되었기 때문에 원죄를 안고 태어났으며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없다고 주장한다. 러시아 정교는 오히려 '인간 어머니'로서 성모 마리아의 역할을 강조한다.
- 러시아 정교와 로마 가톨릭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교부, 즉 로마 교황이나 러시아 총대주교의 권한에 대한 입장 차이다. 로마 교회에서는 교황의 절대권과 '무오류설'을 주장하낟. 한마디로 교황의 결정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으며 교회의 모든 문제에 대하여 절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러시아 정교에서는 교황도 인간이기에 오류를 범할 수 있으며 절대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 양파 모양으로 보이는 그 지붕은 사실 촛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러시아 정교 신자들이 신에게 올리는 기도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또한 폭설이 잦은 러시아에서 돔에 눈이 쌓이지 않게 하는 효과까지 건축학적으로 치밀하게 고려한 것이었다.
-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알코올 분해 효소를 만드는 데히드로게나아제라는 탈수소효소가 더 많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러시아 사람들이 추위를 견디려고 독한 보드카를 마시는 줄 알았는데, 체질적으로 술이 잘 받는 민족이었던 것이다.
- 우리가 양주라고 부르는 럼, 브랜디, 위스키 등은 일반증류법, 즉 한 차례의 증류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보드카는 연속증류법, 즉 다단계 증류에 의해 비등점이 다양한 불순물들이 순차적으로 제거된 후 자작나무 숯(활성탄소)으로 다시 한 번 여과시켜 만들어지는 매우 순도 높은 무색·무미·무취의 알코올이다.
- 현재 생산되는 대부분의 러시아 보드카와 우리에게 익숙한 미국의 스미노프, 스웨덴의 앱솔루트 등이 모두 밀로 만들어진다.
- 시베리아횡단철도 공사가 시작된지 3년이 지났을 때 비테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알렉산드르 3세가 사망한다. 그리고 우유부단한 맞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실정으로 러시아 전국이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 트로이카는 18세기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러시아에만 존재했던 마차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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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논란의 여지 없이 로마노프 왕조의 4대 왕인 표트르 대제다.
4부 전세계가 감동하는 대문호의 나라
-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약혼자를 희로안 친구에게 결투를 신청한 시인 렌스키가 결국 주인공 오네긴의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이다.
- 한국인들이 러시아 문학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작가는 사실 푸시킨이 아니다. 한국인 대다수는 <부활>의 레프 톨스토이나 <죄와 벌>의 도스토옙스키, 아니면 <닥터 지바고>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떠올린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톨스토이도 도스토옙스키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최고의 작가로 숭앙받는다. 운문소설 대작 <예브게니 오네긴>은 1831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러시아에서는 꼬마들까지 줄줄외울 정도로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다. 러시아의 시인이자 비평가 아폴론 그리고리예프는 “푸시킨은 우리의 모든 것”이라고 했다. 외국인이 러시아에 대해 뭔가 안다고 하면서도 푸시킨에 대해 모른다면 사실 러시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 표트르 대제는 경쟁력 있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표트르는 먼저 케케묵은 러시아인의 구습을 타파하고 보수적인 계급제도를 송두리째 뒤집었다. 가장 총애하던 신하가 어린 시절 크렘린의 붉은 광장에서 만난 떡 파는 소년이었을 정도다. 표트르 대제는 능력 있는 인재라면 천민이든 구족이든 혹은 러시아인이든 외국인이든 가리지 않고 기용했다. 심지어 왕의 장자 세습제도 철폐하고 현직 왕이 선택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음 왕이 될 수 있도록 지명제로 바꾸어버렸다.
- 러시아 사람들이, 조금만 더 오래살아줬더라면 러시아의 역사가 지금보다 나아졌을 거라 생각하는 세 사람이 있다. 18세기 초 러시아를 근대화로 이루어냈지만 54세의 나이로 사망한 표트르 대제, 1917년 러시아혁명을 일으키고 55세의 나이로 사망한 레닌, 그리고 바로 진정한 의미의 러시아 문학을 탄생시켰지만 39세의 나이로 아깝게 세상을 떠난 푸시킨이다.
- <데미안>의 작가 헤르만 헤세는 “고통의 한계까지 시달렸을 때, 희망은 사라지고 절망을 호흡해야 할 때, 우리는 도스토옙스키를 읽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 2007년 영어권 작가 125명이 선정한 역사상 최고의 문학작품에 톨스토이의 작품 <안나 카레니나>가 선정되었다. 1930년대 이후 이 소설은 네 번이나 영화화되었고 그때마다 그레타 가르보(1935), 비비안 리(1948), 소피 마르소(1997), 키이라 나이틀리(2013) 등 최고의 여배우들이 비련의 안나 역할을 맡았다. 무려 140여 년 전(1877)에 쓰인 바람난 귀부인의 자살 이야기의 인기가 이렇듯 식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이 작품이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우리 인생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은 톨스토이 전 작품에 걸쳐 반복적으로 던져지는 질문, 바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화두다.
5부 러시아를 만든 리더들
# 줌인 러시아2
독서일: 2020/07/26
비고: 2020년 7월 26일 오후 1:33
작가: 이대식
출판사: 삼성경제연구소
01 영광, 몰락, 부활의 오디세이│블라디보스토크
- 사장교는 철탑에 드리운 강철 케이블로 다리 상판을 지탱하는 다리로, 세계에서 가장 긴 사장교가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다. 2012년에 완공되었다.
02 러시아의 미래를 책임질 극동개발의 전진기지│하바롭스크
- 2000년 5월 푸틴은 효율적인 국가 관리를 위해 러시아를 8개 연방관구로 나누고 그중 극동연방관구의 행정수도를 블라디보스토크가 아닌 하바롭스크로 정했다.
03 뜨거운 우정을 간직한 시베리아의 동쪽 끝 도시│치타
- 1860년 극동지역이 러시아에 귀속되기 전에는 수도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그리고 가장 추운 땅이었다.
04 러시아, 몽골, 그리고 한반도까지 품은 시원의 땅│울란우데와 바이칼호
05 아름다운 자연, 숭고함, 첨단기술이 생동하는 도시│이르쿠츠크
- 잠시라도 남편을 더 보고 싶어 산비탈에 올라가 울타리 너머 남편의 모습을 좇았고 죄수들이 노역이나 산책을 나오면 몰래 숨어 훔쳐보았다. 트루베츠코이가 꽃을 꺾어 길에 던져두면 예카테리나는 간수 몰래 그 꽃을 집어오곤 했다.
06 카자크족의 후예들, 러시아의 중심도시를 세우다│크라스노야르스크
- 크라스노야르스크는 러시아의 지리적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 점에서 러시아인들에게 상징적 의미가 큰 도시이다.
07 황제의 도시, 거지의 도시│톰스크
08 ‘새로운 시베리아’와 그 보물들│노보시비르스크
09 따뜻한 볕이 내리쬐는 시베리아의 ‘봄(春)’│옴스크
- 나폴레옹전쟁에 참여했던 귀족 장교들은 유럽의 자유주의 사상을 러시아 국내로 가져와 퍼뜨렸다.
- 도스토옙스키는 <백치>에서 자세히 서술한다. 강도에 의해서 죽는다거나 전투 중에 죽는 것은 사망 직전까지는 어쩌면 구사일생으로 살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에 차라리 덜 무섭지만, 죽음이 확실하다는 생각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것만큼 공포스러운 것은 없다고 말이다.
- 도스토옙스키는 옴스크 수용소에서 1854년까지 4년간 혹독한 유형살이를 한다. 아마도 김춘수 시인의 상상력은 여기에서 연유한 것 같다.
- 옴스크는 인구 약 116만 명이고 카자흐스탄과 접경지인 옴스크주의 주도로, 러시아 남쪽 국경을 지키는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다. 2개의 강(이르티시강과 오비강)이 만나고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지나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노보시비르스크에 이어 시베리아 제2의 도시인 옴스크는 19세기 말에 건설된 도시인 노보시비르스크보다 더 깊은 역사를 자랑한다.
- 옴스크는 러시아에서 햇빛 쨍쨍하고 맑은 날이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이다.
- 2006년 진주시와 자매결연하여 한국과도 한층 가까운 도시가 되었다.
10 시베리아의 뿌리를 찾아서│토볼스크
- 토볼스크에서 도스토옙스키가 데카브리스트의 부인으로부터 선사받은 성경책을 죽음의 순간까지 간직한 것은 러시아 문학사에서는 이미 유명한 일화이다.
- 토볼스크는 인구가 10만 명도 채 되지 않는 시베리아 도시 중 가장 작은 규모의 도시이다.
- 토볼스크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한 인물은 표트르 대제다. 개혁의 상징 표트르 대제는 1708년 처음으로 이 도시가 시베리아의 주도임을 공식 선포하고 1711년 최초로 주지사를 파견했다. 동시에 크레믈내에 관공서와 교역소 등 다수의 석조 건물을 지어 풍부한 앙상블을 만든 주역이기도 했다. 도시 외곽에는 제지, 유리, 가죽 등 대규모 국영 공장을 세웠고, 무기 공장까지 들어섰다. 명실상부한 시베리아 산업 및 경제의 중심지로 자리 잡은 것이다.
- 이런 토볼스크의 기세는 19세기 말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토볼스크보다 훨씬 아래쪽으로 지나가도록 설계되어 옛 위상과 명성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는 어린 왕자를 살해하고 왕위에 올라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는 보리스 고두노프가 결국 자신의 어린 왕자도 잃고 왕위도 잃게된다는 줄거리다.
- 1917년 2월 혁명으로 전격 퇴위한 러시아제국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가족은 당시 수도 페트로그라드 외곽에 위치한 별궁 알렉산드르궁에 가택 연금되었다. 라스푸틴의 고향이 토볼스크이다.
11 피 위에 세워진 슬픈 도시│예카테린부르크
- 이파티예프 하우스(니콜라이 2세가 총살당한)가 있던 자리에 세운 '피 위의 교회'
- 예카테린부르크는 지금도 제조업 비중이 총생산의 80%를 넘는 명실상부한 공업도시이다.
- 고속 성장하는 이 도시의 경제를 이끌고 있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러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기업 ‘우랄마시’이다. 우랄마시 공단이 들어선 지역은 행정구역으로는 예카테린부르크에 속하지만 350헥타르에 달하는 넓은 면적 때문에 아예 ‘우랄마시시’라 불린다. 축구장 32개 넓이에 해당하는 공장 12개가 모여있다. 2000년 초 한국의 일간지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공장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 러시아 철광의 75% 이상, 주강과 냉연강판의 67%, 석유의 80%, 천연가스 및 석탄의 50%, 철도 레일의 100%가 우랄마시의 장비로 생산되고 있다.
12 아낌없이 주는 땅, 풍요로운 도시│페름
- 한때 이 지역은 러시아 전역에서 먹는 소금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던 곳이었다.
- 1648년에는 ‘소금 반란’이 발생했다. 정부가 세수 확대를 위해 소금에 간접세를 부과한 결과 소금 값이 폭등하고 공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는 지금까지고 귀중한 손님이 방문하면 반드시 그 집 입구에서 빵과 함께 소금을 먼저 대접하는 전통이 이어져온다. 비근한 예로 2019년 4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언론에 노출된 첫 장면도 빵과 소금을 대접받는 모습이다.
- 이상한 동상 ‘소금에 절인 귀, 페름 사람’은 언뜻 유머러스해 보이지만 사실 페름 사람들의 힘겨운 노동과 쓰라린 애환을 담고 있는 조각물이다.
- 페름의 운명을 바꾼 러시아 지질학의 선구자. 파벨 프레오브라젠스키. 우랄 지역에서 최초로 석유와 칼륨염을 발견했다. 페름의 소금산업이 ‘식용’에서 부가가치가 훨씬 높은 ‘공업용’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13 성모 마리아의 기적과 ‘어머니 강’에 담긴 슬픔│카잔
- 러시아는 1240년부터 1480년까지 무려 240년간 몽골의 지배를 받았다.
- 이반 뇌제 시절 갘잔 정복은 러시아 역사에서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 오늘날 러시아의 어머니 강이라 불리는 볼가강을 이때 얻어 우랄산맥을 넘어 시베리아 정벌을 시작할 수 있는 근거지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 이반 뇌제의 명으로 카잔 성모화가 발견된 곳에 지은 보고로디츠키 수도원
- 러시아제국의 수호 성모화가 발견된 도시이자 러시아의 어머니 강인 볼가강 유역에서 자리 잡은 기적의 도시 카잔은 러시아인들 사이에서 아주 중요한 유적지로 여겨진다.
- 러시아의 젖줄이자 '어머니 강'이라 불리는 볼가강은 고대 러시아어로는 '큰물', 한마디로 '강 중에 강'이라는 뜻으로 실제로 유럽에서 가장 큰 강이다. 러시아 서북쪽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사이에 위치한 발다이 구릉에서 기원하여 동남쪽으로 3,530km를 흘러 카스피해까지 이른다.
14 작가와 사랑에 빠진 도시│니즈니노브고로드
15 지지 않는 도시, 현실이 된 전설│모스크바
- 862년 세워진 류리크왕조의 수도는 북유럽에서 가깝고 지금의 모스크바보다 훨씬 북쪽에 위치한 노브고로드였다. 그때 모스크바는 지도상에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로부터 20년 뒤인 882년 키예프로 수도가 옮겨졌고, 이후 약 360년간은 이 도시가 러시아의 수도 역할을 고수한다.
- 1147년 4월 유리 돌고루키 공후가 스뱌토슬라프를 모스크바로 초청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것이 역사상 처음으로 모스크바가 언급된 기록이고 이를 근거로 모스크바는 1147년을 도시가 창건된 해로, 유리 돌고루키를 그 창건자로 기념하고 있다.
- 유리는 실제로 1147년과 1155년 두 차례에 걸쳐 키예프 대공의 지위를 차지했는데, 그가 두 번째로 키예프 대공이 된 다음 해인 1156년 모스크바에 나무요새 건설을 명했고 이것이 현재 크렘린의 전신이 된다.
- 흥미로운 것은 모스크바가 러시아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몽골에 가장 충직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러시아의 최고 지도자의 대공의 지위는 몽골이 정해줬고 대공은 러시아에서 조공을 거둬 몽골에 바치는 대리 수금자 역할을 했다. 몽골의 인정을 받기 위한 지방 공후들의 경쟁에서 가장 돋보인 사람이 바로 모스크바 공후였다. 그 대표 인물이었던 이반 칼리타는 몽골에 바칠 조공을 워낙 잘 걷어서 '칼리타'라는 공식 별칭까지 얻었다. '칼리타'는 러시아어로 돈주머니라는 뜻이다.
- 1471년 야로슬라브 공국, 1474년 로스토프 공국에 이어 1478년 가장 독립성이 강했던 러시아 최초의 수도 노브고로드 공국까지 모두 모스크바 공국에 병합되면서 드디어 러시아는 '국가'로 불리기 시작했다.
- 이반 3세는 러시아 대공 중에는 처음으로 'The Great'라는 칭호를 얻어 '이반 대제'라고 불린다.
16 초원에 펼쳐진 건축 박물관│황금고리(야로슬라블,블라디미르,수즈달,세르기예프포사트)
- '황금고리' 지역의 도시들은 키예프에서 모스크바로 러시아의 중심이 옮겨가는 과도기인 11~13세기 사이에 탄생하거나 번성했기에 러시아 바깥에는 오랫동안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 '황금고리'라는 별칭처럼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는 문화유산과 자연경관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이 도시들은 러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 여행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루트 중 하나가 되었다.
- 야로슬라블의 창건자 야로슬라브와 곰 이미지가 함께 담긴 1000루블 지폐. 야로슬라브는 곰을 제압하고 이곳에 교회를 짓고 요새를 건설할 것을 명령했다. 이렇게 도시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야로슬라블은 러시아 역사에서 곰이 처음으로 데뷔한 무대가 되었다.
- 수즈달 크렘린 앙상블의 핵심을 이루는 성모 탄생 교회. 하단부는 백석으로, 상단부는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다.
17 유럽의 재현, 새로운 러시아│상트페테르부르크
-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모스크바에 도착하면 사실상 9,288km 대장정이 끝난다.
-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 대제 이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까지 제정러시아의 역사, 정치, 문화의 중심지였다. 도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유럽 10대 관광도시와 세계 20대 관광도시 안에 들어가느 도시이다.
- 1764년 베를린의 상인 고츠콥스키가 러시아 황실에 진 빚을 명화 225점으로 갚겠다고 제안하자 예카테리나 여제는 두말없이 수락한다. 그 속에는 라파엘로, 렘블란트, 루벤스, 반 다이크 등 유럽 최고이 명화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미술관 에르미타주의 역사는 바로 이때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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