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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여행

[남해] 독일마을 파독전시관. 겨울 남해여행.

by Whatever it is, it matters 2019. 2. 2.

남해시 독일마을 파독전시관


지도를 클릭하시면 위치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외화 벌이 1세대의 영광과 애환을 담은 파독 전시관. (2세대는 중동?)


독일 아리랑이 되어. 준공기념(2015년 7월 16일) 비석에 새겨진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이름.

전시관은 그들이 기증한 생활용품들이 오늘날에는 역사가 되어 있다. 

파독 간호사 김우자님의 물건이 눈에 많이 띄었다.


독일 아리랑이 되어......

너무나 가난했던 1960~1970년도 우리나라!

가족부양을 위해 머나먼 독일로

파독 과우와 간호사로 떠났던 젊은이들..

조국의 경제발전에 초석이 된 당신들의 땀과 눈물은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독일마을 파독 광부 간호사 정착 1세대>

파독 광부

김두한 김치연 구장서 고재순 배정일 선우곤 신병윤 윤성무

이문삼 이병종 이승준 정문채 조용길 하봉학


파독간호사

김경자 김남옥 김우자 김연식 김추자 권광순 권점순 류길자

문영숙 문원자 박군자 박미자 석숙자 서부임 서원숙 송애영

이명순 이갑순 우춘자 유윤자 류정희 윤명희 이경자 이문자

이양자 이정희 왕넬리 주봉순 최숙녀 최순자 허완자



처음엔 무슨 상징인가 생각했었는데,

전시관 안에 들어가 보니 저게 전형적인 탄광을 움직이는 도르래 휠 철골을 형상화한 것


파독광부, 간호사 추모공원

Friedhof / Memorial cemetery


추모공원에서 바라본 풍경



한·독 통상우호항해조약(1883년) 문서가 전시관 입구에서 나를 반긴다

1883년 11월 26일(조선 26대 고종20년) 우리나라와 독일이 최초로 외교

관게를 수립하면서 체결한 「한·독 통상우호항해조약」 사본이다. 


'조선의 국왕과 독일제국을 대표하는 독일 황제이자 프로이센 국왕은

양 제국의 지속적인 우호관계와 양국 국민들의 편안한 통상 교류를 위하여

조약을 맺기로 결정하였다' 한·독 통상조약의 시작문구이다.  


'미스터 션샤인'을 보고 난 후라,

마음 한켠이 얼얼하다. 이승준이 고종 연기를 너무 잘한탓도 있다.

시대의 비극을 마주한 사람이 고종만은 아니었으리라.


그후 일제강점기라는 긴터널이후에

비극을 희극으로, 희망으로 바꾸고자 독일로 떠나간 

이들의 이야기가 여기 남해 전시관에 있다.


한국 광부 독일 파견 공문(1963년)

1963년 12월 16일 대한민국정부(외무부)가 주한독일대사관에 보낸 공문

사본으로 '한국 광부의 임시고용계획에 관한 한·독정부 간의 협정

(제1차 광부협정)에 동의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1963년 12월 16일 위 협정이 체결·발효되었는데, 이례적으로 독일이

유럽권 밖의 국가와 체결한 최초의 협정이었다.


2014년 6월 28일 남해파독전시관 개관 시 

롤프 마파엘 주한독일대사가 남해군에 기증하였다.(주한 독일연방공화국 대사관)




대한민국 연혁이 펼쳐진

복도를 지나면



글릭아우프!(GLÜCK AUF)

지하 1,200m 탄광으로 들어가는 파독 광부들의 아침은 'GLÜCK AUF' '살아서 돌아오라'는 인사로 시작되었다.

그것은 그리운 고향과 가족 그리고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글릭아우프!"


잠시나마 좁은 갱도를 지나던 그들과

공명할 수 있다.






떠나간 이들을 그리워하는 편지.

여기서 김우자님을 인지하게 되었다.


'누님 먼 이국의 하늘은 무슨 빛을 하고 있습니까?

여기 고국의 높고 푸른 하늘은 누님을 부르며 

항상 호수를 연상케합니다.'


부족하고, 힘들고, 그리웠지만

이때는 낭만이 가득했다. 


독일마을 조성과정 연혁









다양한 전시물을 지나서

근무계약서와 파업관련 문서들을 보녀,

오늘날 내가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것이

전태일 열사와 이분들의 투쟁의 결과임을 알게된다.

항상 감사한다.



출구로 나서는 길에 

파독 공부와 간호사들의 말씀들이

마음을 울린다. 


"지금도 그때 받았던 봉급표를 간직하고 있다.

거기에 내 젊음이 있기 때문에"

-파독광부 이병종



"우리는 독일인보다 작았지만 

그들에게 모법이 될 만큼 열심히 일했다."

-파독광부 조용길



지하 1,000미터 아래서 배웠다.

끝나지 않는 어둠은 없다는 것을"

-파독광부 신병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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