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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의 비밀_EBS

by Whatever it is, it matters 2022. 2. 5.

독서일: 2014/10/10 오전 11:02
비고: 2014년 10월 10일 오전 11:02

 

**권력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능력입니다. 주로 세 가지 방법을 쓰지요. 강압을 통해서, 대가를 지불해서, 또는 매력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강압이나 대가가 아닌 매력을 통해 원하는 바를 이룰 수도 있는데 이것이 소프트 파워입니다.**

- **조지프 나이_하버드대 석좌교수**
- 고대 패권국가였던 로마는 어떻게 붕괴직전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동맹국들의 충성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까? 1588년, 변방의 섬나라 영국은 어떻게 세계제국이라 불리던 스페인에게 승리할 수 있었을까? 야만적인 유목민의 나라 몽골은 50년의 짧은 기간 동안 어떻게 전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을까? 경상도 크기의 소국 네덜란드는 어떻게 17세기 황금시대를 이룰 수 있었을까? 일본이나 독일은 왜 패권국가가 되지 못했을까? 1960년대 미국의 민권운동! 미국을 내란직전 상황까지 내몰았던 흑백갈등. 초강대국 미국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이 해답은 바로 ’다양성’과 ‘관용’이다. 다양성과 관용은 강대국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조건이다. 역사상 존재했던 세계 초강대국들은 서로 상당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적어도 해당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절대적인 패권국가에 오르기 까지 하나같이 대단히 다원적이고 관용적인 나라들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관용이란 인권과 관련된 현대적 의미가 아니라 “이질적인 집단을 활용하는 능력” 을 의미한다. 말그대로 실용적이고 전략적 차원의 관용인 것이다. 어떤 역사적 상황이라고 해도, 세계 유수의 인적 자본 이라는 것은 어느 장소나 어느 한 인종 혹은 어느 한 종교집단 안에서 발견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관용을 통해 인종, 종교, 배경을 따지지 않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능력과 지혜를 갖춘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야만 한다. 이는 편견에 물들지 않는 개방적 태도를 유지하도록 할 것이다. 따라서 기술적 혁신 역시 오직 관용적 태도 위에서만 가능하다. 또한 박해 받는 이질적 집단을 체제 내에 끌어들임으로써 우수한 인재들이 자연스럽게 몰려드는 효과를 만들어 내, 주변지역의 약소국들 혹은 잠재적 동맹자들을 용이하게 자신의 편으로 끌어 들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한 사회가 한 지방이나 지역이 아닌 전 세계에서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군사적, 경제적 면에서 세계의 최첨단에 서 있어야만 한다. 이것에 ‘관용’이라는 필수 조건을 더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강대국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 할 것이다. ‘강대국의 비밀’은 강대국에 대한 학술적인 접근과, 동시대의 경쟁자들과 비교 분석을 통해 강대국의 비밀을 낱낱이 밝힌다. **

 

 

<1부. 로마 시민권>

** 고대 패권국가였던 로마는 어떻게 붕괴직전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동맹국들의 충성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도시국가에서 세계제국으로 성장하던 성장기 로마에 닥친 최대의 위기는 언제였을까? 로마는 언제나 승리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부분의 전쟁에서 로마는 패배로 시작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특히 기원전 218년에 발발한 한니발 전쟁(2차 포에니전쟁)은 로마 최대의 위기였다고 할 수 있다. 로마연합은 어떻게 이런 위기 속에서도 해체되지 않았으며 로마는 어떻게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동맹국들의 충성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까?

**한니발(포에니 전쟁) VS 알렉산더(페르시아 전쟁)**

ㄴ 페르시아(불관용)으로, 이수스 전투 승리(페니키아인/이집트인/이오니아인 이탈) / 가오가멜라 전투 승리(메소포타미아 이탈) -> 멸망

ㄴ 한니발 역시, 알렉산더 대왕 전투 참조 후 전쟁에 임함. 첫번째 전투, 완승 후 갈리아족 포섭. 두번째 전투, 트레시메나 전투에서도 완승. 로마를 우회후 칸나이(그리스계) 전투로 5만 전사. 하지만 동맹국들의 이탈은 없었다. 그 이유는 "로마시민권". 건국초 부터 패배자들도 동등한 시민으로 받아들임. 노예도 10년 후 자유민으로. 자녀들은 로마 시민으로. "개인의 혈통이나, 문화, 배경, 종교는 상관없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강대국에 소속해 있다고 느낌. vs 아테네는 양 부모가 시민이면 시민으로.. 다른 사람들은 이류 민족으로 여기게.


<2부. 대영제국의 탄생>
- 1588년, 변방의 섬나라 영국은 어떻게 세계제국이라 불리던 스페인에게 승리할 수 있었을까?

16세기. 스페인 함대는 오스만해군을 격파한 1571년 레판토 해전이후 아르마다 (무적함대)로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17년뒤인 1588년! 스페인의 필리페 2세는 영국침공을 결정하고 세계 최강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자신의 함대를 영국으로 파견한다. 유럽은 숨을 죽였다. 만약 영국해군이 아르마다에게 패배한다면 유럽 최강의 스페인 육군이 영국에 상륙할 것이고, 엘리자베스의 영국은 끝장이 날 것이다. 그러나 전투결과는 어이없을 정도로 싱거웠다. 아르마다의 참패로 끝난 것이다. 어떻게 세계최강의 함대가 17년만에 허약한 함대로 변한 것일까? 어떻게 변방의 소국 영국은 세계제국이라 불리던 스페인에게 승리할 수 있었을까?

1588년 아르마다(무적함대)가 출항했을때, 영국군은 아주 규모가 작았습니다. 완전히 아마추어들로 구성되었지요. 반면 스페인 군대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뛰어난 군대였고, 실전으로 단련된 군대였습니다.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스페인의 보급기지를 기습! 37척의 함선을 격파.

칼레 해전 새로운 전략: 육박전이 아닌, 기동/포탄전. 그리고 화공. 스페인의 육박전 고수(기존 승리의 방식)는 결국 패배로.

<3부. 세계제국 몽골>

- 야만적인 유목민의 나라 몽골은 50년의 짧은 기간 동안 어떻게 전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을까?

50년! 인구 10만도 안되는 변방의 유목민 집단에서 출발한 몽골제국이 세계를 정복하는데 걸린 시간이다. 그들은 어떻게 그토록 짧은 시간에 동쪽끝 한반도에서 서쪽끝 유럽까지 전세계를 지배하는 세계제국이 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토록 짧은 시간에 야만적 유목민은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력을 가지게 되었을까?

반세기전 야만인으로 불리던 몽골군이 화약이라는 당시 최고의 무기를 활용하여 유럽 정복.

ㄴ 영국인이 몽골군의 장교로 활약할 정도로 최고의 인재들을 영입(대우도 좋았고, 존경도 받게 하여 외부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섬)

ㄴ 자신만의 전투방식(초원 기병전)만을 고집하지 않고, 중국의 공병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임. 공성무기 제조 바그다드를 열흘안에 함락.

ㄴ 남송과의 전쟁에서는 아랍출신 기술자 함락. 견고한 성을. 신식 투석기인 회회포로 함락.

칭기즈 칸은 씨족 중심의 사회가 아닌 동료들의 충성심과 우정을 더 믿게 되었을 것.그는 씨족 사회가 전쟁과 갈등 그리고 분열을 일으킨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렇기에 동료들의 우정에 의지한다면 그는 안전하다고 믿음. → **혈연, 민족, 종교가 아니라 능력과 충성심만으로 인간을 평가**.

아버지를 살해한 원수, 타타르족와의 전쟁 승리 후 관행(노예화)을 따르지 않고, 적은 죽이지만 힘없는 사람에게는 베푼다. 살아남은 자들은 몽골족으로 받아들임(시민권 비슷) → 공격하는 자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고, 함께 하고자 하는 자는 받아들인다. **'패자에 대한 관용'**

발주나 맹약(1203년)_ 양 아버지에게 배신당해, 단 19명의 부하만 남은 시절, 이들은 모든 것을 걸고 충성을 맹세_친족도, 몽골족도 아닌 이들..동생인 카사 제외, 종교도 다름. 칭기스칸은 "우리는 이 흙탕물을 마실것이다"라고 말하고 발주나에서 맹약. 칭기스칸 군대의 기초가 됨. 이를 바탕으로 다시 군대를 모으고 전쟁에서 승리. 각기 다른 부족 출신의 사람들로 군대를 구성. **하나의 몽골**.

1242년 유럽에서 갑자기 사라진 몽골부대.(프랑스 정복전 칸의 죽음)

몽골의 수도. 카라코롬. 모든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평화의 땅.(칸의 궁전, 무슬림 거리, 중국인 거리, 기독교인을 위한 교회까지)

그리고 멸망의 이유, 후계자 쟁탈전, 권력다툼, 신분제도와 민족차별 실시.

 

<4부. 가장 작은 제국, 네덜란드>
- 경상도 크기의 소국 네덜란드는 어떻게 17세기 황금시대를 이룰 수 있었을까?

1492년은 스페인에 의한 재정복 작업(레콘키스타)이 완료된 해이며, 스페인국왕의 명에 따라 항해에 나선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해이다. 이해를 기점으로 스페인은 해가지지않는 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해에는 또 다른 결정적 사건이 일어난 해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알함브라 칙령의 공포이다. “유대인들은 … 모두 떠나라." 그때까지 스페인 상업의 중추를 맡고 있던 유대인들은 눈물을 머금고 스페인을 떠나 포르투갈로 이주했고 다시 포르투갈이 스페인에 병합되자 **종교의 자유를 찾아 네델란드로 집단 이주**했다. 네델란드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이미 종교의 자유를 확고한 신념으로 제시하였다. 이렇게 스페인을 떠난 사람들 중에는 철학자 스피노자의 아버지도 있었으며, 경제학자 리카도의 조상도 있었다. 스페인은 그렇게 **네델란드에게 유럽 상업의 맹주자리를 헌납**했다.

1582년에야 독립한 소국 네덜란드. 상업적 세계의 바다 지배.

80년 전쟁이라는 네덜란드 독립전쟁. 스페인 펠리페2세가 독립으로 몰고감. 종교개혁을 막고, 가톨릭으로 유럽을 통일 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함. 네덜란드는 칼뱅주의가 급속도로 확산.(네덜란드 상인을 보호하는 소명의식(직업)을 제공)

성상파괴운동이 네덜란드의 독립으로..(그저 종교의 자유만 있었으면 독립안했을 것)

스페인의 종교 탄압이 네덜란드로 종교의 자유를 찾아 떠난 사람들을 결집. 17세기 네덜란드 번영으로. 관용의 승리. 화물운송비 타 유럽에 1/3. 세계무역의 75%. 전세계의 설탕(당시 소금보다 비쌈)같은 귀중품들의 집결지. 설탕정제산업. 다이아몬드산업(유대인 세공). 금융업(유대인) 선진기법.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주식회사. 유한회사라는 새로운 개념).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

이들을 추방시킨 스페인은 쇠락의 길로. 순수혈통과 기독교근본주의를 얻고 제국을 잃었다.

데카르트, 스피노자 등의 사상가의 네덜란드에서의 활동. 관용이 만든 세계 최소의 제국.

 

<1964년 미국, 미시시피의 자유여름>

- 1960년대 미국의 민권운동! 미국을 내란직전 상황까지 내몰았던 흑백갈등. 초강대국 미국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60년대 미국을 갈갈이 찢어 놓았던 흑백 인종갈등은 미국을 내란 직전의 상황으로까지 내몰았다. 인종적 편견으로 무장한 경찰이 공공연히 폭력을 휘두르고, 빈곤층 흑인의 폭동이 전국을 휩쓸었다. 세계 민주주의의 모범을 자처하던 미국은 왜 이런 지경까지 내몰렸을까? 이 갈등은 과연 어떻게 해결되었을까? 그리고 60년대 민권운동이 인류역사상 전무후무 하다는 초강대국 미국에 남긴 것은 과연 무엇일까?

1863년 1월 1일, 링컨 노예해방 선언. 북부 승리 및 흑인 선거권 획득.

1964년. 흑인들은 투표도 못하게 됨. 남부. 짐크로우법. 1877년 북부군 가자 마자. 흑인 차별법.미시시피, 문맹시험 도입. 이후 남부에서 흑인 선거권 박탈을 위한 법 마련. 인두세. 백인전용. 합법적 흑인차별.

"자의적 차별에 근거한 어떤 사회도 생산적이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모두에게 있어서 말이죠" -사무엘 로버츠_콜럼비아대 미국사 교수

남부의 저임금 노동 활성화로 미국에서 가장 가난하니 지역. 전국 평균의 절반의 부.

남부를 제외한 미국은 종교의 자유까지 인정하는 관용의 나라. 종교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동(1776년, 독립선언서)

최신기술을 이룩한 숙련된 기술자들을 유입.(자유로운 이민. 신세계로 통하는 관문으로 불림. 아메리칸 드림)

급속도로 유럽의 기술을 따라잡음. 용광로(Melting Pot)

1964년 민권법 통과.

남부주는 저항. 하지만 미시시피의 자유여름이 시작. 미 전역에서 대학생들이 오하이오로 결집.

인권운동가 실종사건: 마이클/제임스/앤드류(실종 44일만에 주검으로) → 밥 모제스(자유여름 창시자)는 그만 두고 싶은 사람에게 그만두길 희망.

미시시피는 폭탄테러 등 저항. 하지만 열기는 더 고조.

→ 1965년 셀마운동(마킨 루터 킹) → 피의 일요일. → 전국민에게 공분. → 1965년 8월 6일. 투표권법 통과(연방정부가 주정부에 강제 개입)

흑인의 투표율이 높아짐에 따라 민선 선출자. 흑인 엘리트가 증가하기 시작.

2008년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

 

<6부. 강대국의 조건>

제국을 만든 것은 그저 힘이 아님.

"우리가 생각하는 제국은 하나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가가 아닙니다. 정치체제 안에 다양한 집단이 존재합니다. 다양한 사회집단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는 것이 제국의 주요과제입니다."

- 제인 버뱅크_뉴욕대 역사학 교수

강대국_세계에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 직접적인 강요없이도 다른 국가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진 국가. 굳이 자국민들이 직접 행동하지 않아도 동맹을 활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국가. 또한 다른 국가보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으며 이 경제적인 힘을 공식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국가. 전통적인 관점에서 중대한 전쟁에서 승리하는 국가.(19,20세기 정의). 경제력을 갖추고 사람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소프트파워를 갖춘 국가(군사/경제/소프트파워)

소프트파워는 한 국가의 문화와 가치, 정책을 다른 국가들이 인정할 때 커집니다.

모든 제국과 강대국은 비슷한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그중 하나는 방대한 영토를 어떻게 통치할지의 문제입니다. 방대한 영토는 때로는 바다를, 때로는 육지를 의미하며 혹은 둘 다 의미하기도 합니다. 과거에도 그래왔고 오늘날에도, 넓은 영토를 통치한다는 것은 여전히 제국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 제인 버뱅크_뉴욕대 역사학 교수

(로마와 같이) 거대한 제국을 단지 무력으로만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무력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병력이 필요한데 사실상 그런 병력을 모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자발적으로 제국의 일원이 되고 싶게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 로마 제국은 굉장히 뛰어났고 그 덕분에 아주 오랜 기간동안 번성할 수 있었지요.

- 아드리안 골드워시_고대로마전투,군사박사

적극적인 동의와 자발적인 참여.

강대국으로 번성하기 위한 필수 요건 중 하나는 나와 다른 국가와의 이해관계가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납득하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행동을 취하고 할 때, 그 행동은 다른 이들도 동의할 수 있는 원칙에 기반을 두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로마는 자신들이 피데스(fides) 즉 신뢰를 지킬 의무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승리를 통해 얻은 것은 동맥국들과 함께 누려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복당한 사람들이 나중에 오히려 통치자가 될 수 있었던 곳은 로마 제국이 유일합니다.

- 데이비드 포터_미시건대 그리스, 로마 역사 교수

로마제국은 특이했습니다. 갈리아인, 영국인, 스페인인, 시리아인으로 남기보다 오히려 로마인이 되고 싶어햇던 것입니다. 정복자와 정복당한 사람들의 개념은 없었습니다. 로마는 모든 사람들을 로마인으로 만들었습니다. 반면 20세기 일본은 점령한 국가들의 국민들에게 매우 잔혹한 대우를 하였고 정복당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변화시킬 생각을 안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로마 제국은 역사상 최고의 강대국이었습니다.

- 아드리안 골드워시_고대로마전투, 군사박사

시대를 막론하고 강대국은 다민족, 다인종으로 이루어졌으며 다양한 종교가 존재하는 국가입니다. 로마 제국은 다양한 종교를 믿으며 다양한 인종의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졌지요. 하지만 20세기 독일이나 일본처럼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에만 기초하여 제국을 세우고자 하는 나라들은 실패하였습니다. 반면 몽골, 로마, 영국은 다양한 민족과 종료를 국가 체계의 토대로 삼았으며 성공했습니다.

- 잭 웨더포드_칭기즈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저자

관용이란 나와는 다른 종교, 생활방식, 문화 등에 적대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자신만의 종교,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자신만의 민주주의를 믿는다 하더라도 나와 다른 것을 용인하는 것입니다. 관용은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지요... 불관용으로 인해 중동 지역은 세력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이슬람 국가의 시아파와 수니파가 자신의 신앙이 진리라 확신하고 서로를 받아들이지 않고 충돌하는 것은 불관용의 예입니다.

- 폴 케네디_예일대 역사학과 교수, 강대국의 흥망 저자

정복활동을 하면서 칭기즈 칸은 사람들을 몽골인으로 바꾸려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속으로는 이들이 자신의 신념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요. 칭기즈 칸은 이들이 자신의 언어인 몽골어를 배우는 것도 원치 않았습니다. 실제로 외국인들이 몽골어를 사용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었습니다. 칭기즈 칸은 자신의 삶과 법을 지키면서도 다른 사람들은 그들만의 법에 따라 살 수 있도록 허용하였습니다. 그는 종교적 관용과 자유 또한 허용했는데 당시로선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 사람들은 모든 종교, 관습, 언어, 규범 등에 대한 포용으로 유명한 칭기즈 칸이 자신의 지역을 정복해주길 바랐습니다.

- 잭 웨더포드_칭기즈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저자

**강대국을 몰락으로 이끄는 순간**.

어리석은 판단은 스스로를 약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역사의 교훈이죠. 400년전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최고였습니다. 1600년이었죠. 그는 모든 강점을 갖고도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오스만 투르크, 프랑스, 영국과 동시에 전쟁을 벌였던 것이지요. 흡사 아돌프 히틀러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어리석은 판단은 스페인을 몰락으로 이끌었습니다.

- 폴 케네디_예일대 역사학과 교수, 강대국의 흥망 저자

모든 강대국들은 결국 자신의 성공으로 인해 몰락합니다. 자만, 거만, 자기만족 상태에 빠지는 데 이로 인해 힘을 잃게 됩니다.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 중요한 순간이 찾아오지요.

- 앤드류 램버트_킹스 컬리지 해군역사 교수

아테네는 쉽게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았지요. 로마인들의 개방적인 면모를 아테네에서는 찾기 어렵습니다.

물론 개방적이었던 시기도 있긴 합니다. 한 세기 이전 참주 정치를 하던 시기입니다.

초기의 참주들은 폭군이 아니었죠. 이들은 귀족 세력에 반대하고 중산층을 지지하였습니다. '페이시스트라토스'라는 참주가 통치하던 시절, 아테네는 그리스의 패권 국가가 아니었고, 특히 코린트를 포함하여 다른 도시국가들과 경쟁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는 재능 있는 인재를 영입하기 위하여 아테네로의 이민을 장려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첨단 기술 관련 학위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민 시 혜택을 제공하지요. 많은 인재들이 영입되었습니다. 하지만 여론은 바뀌었습니다. 아테네인들은 자신들이 아테네를 통제할 수 없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믿고, 시민권이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 칼 갈린스키_텍사스대 고전학 교수

나치 제국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지요. 나치의 실패는 서로 다름을 수용하지 않는 정치와 연관되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인종적 유사성, 즉 단일 인종에 기반을 둔 제국은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단일 인종으로 구성된 제국을 고집했기 때문에 나치는 피정복민들의 능력을 활용할 수 없었습니다.

- 제인 버뱅크_뉴욕대 역사학교수

일본은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개방된 이민 정책을 통해 컴퓨터에 능숙한 기술자나 상인, 은행가 등의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혜택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은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를 원햇고 자신의 문화가 다른 문화와 융합되는 걸 원치 않았죠.

- 폴 케네디_예일대 역사학과 교수, 강대국의 흥망 저자

저는 중국이 강대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구수를 자랑합니다. 또한 역동적인 경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데 더해 중국은 오랜 기간 존속해 온 제국적인 전통을 갖추고 있으며 그들의 통치 방식 역시 긴 역사를 자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함과 동시에 자신의 입지를 늘리는데 필요한 풍부한 자원과 도구를 갖췄다고 생각합니다.

- 제인 버뱅크_뉴욕대 역사학교수

과거 리콴유(이광요, 전 싱가포르 총리)를 만나 21세기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지에 대해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중국이 13억에 이르는 인구를 가졌을 뿐이기에 부정적이라고 하였습니다. 반면 미국은 전 세계 70억 명에 이르는 인구를 활용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전 세계 다양한 사람들이 융합되면서 형성되는 창의성은 중국이라는 단일국가가 가진 문화적인 힘을 넘어섭니다. 미국이 중국을 한참 앞서고 있는 것입니다. 21세기 말에 상황이 어떻게 진전될지는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21세기 중반까지 미국은 경제, 군사, 소프트파워 세 가지 측면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 조지프 나이_하버드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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