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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장편소설, 채식주의자, 처연함

Whatever it is, it matters 2024. 11. 14. 09:45

 

 

슬프게도..

 

한강 작가의 소설 이제 조금 읽어보는데

"처연함"이 제일 큰 감상으로 다가온다.

 

아내는 칼자국이 선명한 왼손으로 자신의 이마에 쏟아지는 햇빛을 가렸다.

"...... 그러면 안 돼?"

나는 아내의 움켜쥔 오른손을 펼쳤다. 아내의 손아귀에 목이 눌려 있던 새 한마리가 벤치로 떨어졌다. 깃털이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작은 동박새였다. 포식자에게 뜯긴 듯한 거친 이빨자국 아래로, 붉은 혈흔이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 

 

 

처연하고, 모골이 송연하고 저릿저릿하다.

 

그러나 그보다 선명하고 섬뜩하게 기억되는 것은 그 순간 터져나온 처제의 비명소리였다. 고깃덩어리를 뱉어낸 뒤 과도를 치켜들고 그녀는 가족들의 눈을 차례로 쏘아보았다. 흡사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그녀의 눈은 불안정하게 희번덕이고 있었다.

이제는, 그녀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 - 곡식과 나물과 날야채만 먹는다는 것마저 그 푸른 꽃잎 같은 반점의 이미지와 떼어놓을 수 없을 만큼 어울리게 느껴졌으며, 그녀의 동맥에서 넘쳐나온 피가 그의 흰 셔츠를 흠뻑 적시고 꾸덕구덕 짙은 팥죽색으로 굳게 했다는 것은 그의 운명에 대한 해독할 수 없는, 충격적인 암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토록 범상치 않은 캐릭터성을 부여하고,

글자 하나하나에 몸서리쳐지는 소름돋음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한강 작가의 능력일 수도 있다.전체적인 맥락속에서 이런 문장을 보고 있다면 그야말로 "강한 혐오"와 만들어진 사회의 규칙 속에서 발악하는 개인의 "실재"에 대해서 복합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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