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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파리는 날마다축제_헤밍웨이

by Whatever it is, it matters 2019. 11. 19.

파리는 날마다 축제(A Moveable Feast)

 

 

파리는 날마다 축제 - 교보문고

헤밍웨이의 젊은 시절 파리 체류기 『파리는 날마다 축제』. 이 책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죽기 얼마 전인 1957년 가을부터 1960년 봄 사이에 젊은 시절 파리에서 거주하던 이야기를 기록한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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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가는 도대체 어떤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느낄 수 있게 만든 작품입니다.
너무 좋은 표현들이 많아서 감탄하면서 2번, 3번 읽게 되는 책입니다. 아무리 곱씹어보고 고민해도 이런 글을 쓸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담백하면서 좋은 문장들이 워낙 많아서요.
 
어쨌든, 소년들이 술을 마시는 대목을 쓰다 보니 나도 한잔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결국 세인트 제임스 럼주를 주문했다. 추운 날 마시는 럼주는 맛이 그만이다.
당신은 내 것이고, 파리도 내 것이고, 나는 이 공책과 이 연필의 것입니다...
나는 공책을 상의 안주머니에 넣고 나서 웨이터를 불러 생굴 한 접시와 달지 않은 백포도주 반병을 주문했다. 글을 끝내고 나면, 마치 사랑을 나누고 난 것처럼 언제나 공허하고, 슬프면서도 행복했다.
약한 금속 맛과 함께 바다 냄새가 물씬 풍기는 생굴을 먹으면서 금속 맛이 차가운 백포도주에 씻겨 나가고, 혀끝에 남는 바다향기와 물기를 많이 머금은 굴의 질감이 주는 여유을 즐기는 동안, 그리고 굴 껍데기에 담긴 신선한 즙을 마시고 나서 상쾌한 백포도주로 입을 헹구는 동안, 나는 공허감을 털어 버리고 다시 기분이 좋아져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우리가 파리로 돌아왔을 때 날씨는 맑고, 차고, 감미로웠다. 그리고 도시는 이미 겨울에 익숙해져 있었다.
당시 나는 시카고의 미술학교에서 처음 알게 된 세잔, 마네, 모네의 작품들, 그리고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보러 그 박물관에 거의 매일 가다시피 했다. 세잔의 그림들은 내가 원하는 수준의 작품을 쓰려면 간결하고 진솔한 문장을 구사하는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깯다게 해주었다. 세잔의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잘 설명하기에는 내 표현력이 부족했다.
앙리 4세 동상이 있는 다리 퐁뇌프Pont Neuf아래 시테섬 끝나락이 뾰족한 뱃머리 모양으로 끝나는 지점 강변에는 커다랗고 아름다운 마로니에나무들이 서 있는 작은 공원이 있다.
만약 차가 운 비가 고집스럽게 계속 내려서 봄이 오지 못하게 밀쳐 낸다면, 우리에게 그것은 마치 한 젊은이가 아무 이유 없이 죽임을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비록 덧없는 봄이라도 일단 오기만 하면 어디서 그 행복을 가장 잘 누릴 것이냐는 것이 내 유일한 관심사였다.
나처럼 자기일에 만족하는 사람은 가난을 그다지 힘겨워하지 않는다.우리는 값싼 음식으로 잘 먹고, 값싼 술로 잘 마셨으며, 둘이서 따뜻하게 잘 잤고,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경마에 대한 관심을 버리자 홀가분했지만, 허전함은 남았다. 그즈음 나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사람이 포기하는 모든 일에는 허전함이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포기한 것이 나쁜 일이라면 공허감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고, 포기한 것이 좋은 일이라면 더 좋은 다른 일을 찾아야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 있었다.
젊고 쾌활했던 내게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언제나 희한하고 우스꽝스러운 사건들이 벌어지곤 했다.
그래서 하루 작업을 마치면 글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실비아 비치의 서점이나 센 강변의 노점 책방에서 구한, 올더스 헉슬리나 D.H. 로렌스처럼 당시에 활발하게 활동하던 작가들의 작품을 읽곤 했다.
배고픔은 훌륭한 교훈이다. 파리에서는 충분히 먹지 못하면 몹시 허기가 진다. 빵집·진열대에는 먹음직스러운 빵들이 그득하고 거리에는 테라스에 차려진 식탁에서 식사하는 사람이 많아서 늘 먹을 것이 눈에 보이고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특파원 일을 그만두고 나서 미국에서 아무도 사주지 않는 글만 쓰고 있을 무렵, 누군가와 점심을 먹으러 간다고 집에 말하고 나왔을 때 가기에 딱 좋은 장소는 뤽상부르 공원이었다. 옵세르바투아르광장Pl. de l'Observatoire에서 보지라르 거리에 이르는 길에는 음식이 전혀 전혀 눈에 띄지 않고, 냄새도 전혀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뤽상부르 공원에 가면 나는 으레 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기곤 했는데, 배가 몹시 고플수록 벽에 걸린 그림들이 더욱 맑고, 또렷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나는 배가 텅 비었을 때 세잔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그가 어떻게 풍경화를 그렸는지를 진정으로 꿰뚤어볼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뒤쪽에 거울이 있는 벽면 앞 테이블을 골라 긴 의자에 자리 잡고 앉자, 웨이터가 맥주를 마시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꽤 괜찮은 맥주 한 병과 1리터짜리 맥주잔, 그리고 감자 샐러드를 주문했다.
맥주는 시원하고 맛있었다. 올리브유를 뿌린 감자 샐러드는 적당히 짭짤하고, 쫀득쫀득했으며 올리브유의 향미도 감미로웠다. 나는 통후추를 가루 내어 감자에 뿌린 다음, 빵을 올리브유에 적셨다. 첫 잔을 시원하게 들이켜고 나서, 그다음부터는 천천히 마시면서 식사했다. 감자 샐러드를 다 먹고 나자, 한 접시 더 주문하면서 세르벨라를 추가했다. 세르벨라는 굵은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를 세로로 자르고 그 위에 겨자 소스를 끼얹은 요리다.
나는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났더라도 그것은 이미 벌어진 일이고, 세상에는 해결할 수 없을 만큼 나쁜 일은 없으며, 어떤 일이 벌어졌든 괜찮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며 그녀를 달랬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음식값을 계산하고 밖으로 나와서 오른쪽으로 돌아 카페 되마고Les Deux Magot에서 커피 한잔하고 싶은 유혹을 피하기 위해 렌 거리R. de Rennes를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는 지름길인 보나파르트 거리R. Bonaparte쪽으로 걸어갔다.
우리가 노트르담 데샹 거리에 있는 제재소 건물 꼭대기 층 아파트에 살던 시절, 집에서 가장 가깝고 괜찮은 카페는 라라클로즈리 데릴라였다. 사실, 그곳은 파리에서 가장 좋은 카페 중 하나였다. 겨울에는 실내가 따뜻하고 봄가을에는 공원과 네 원수 동상 쪽 나무 그늘에 테이블을 내놓은 테라스가 무척 쾌적했다. 테이블들은 큰 길을 따라 쳐놓은 커다란 차양 아래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일하는 웨이터 두 사람과 친구가 되었다. 카페 돔Cafe Le Dome이나 카페 로통드Cafe La Rotonde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절대로 릴라에 오지 않았다. 릴라에는 그들이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고, 설령 그들이 온다 해도 아무도 아는 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몽파르나스 대로Bd Montparnasse나 라스파유 대로Bd Raspail 모퉁이에 있는 카페에 들락거렸고, 어떤 의미에서 이런 장소들은 신문기자들에게 기삿거리를 제공하는 역할도 했다.
"참 복잡하군요." 내가 말했다. "그럼, 저는 신사입니까?" "전혀 아니지요.""그런데 왜 선생님은 지금 저와 술을 마시고 있는 거죠?""난 지금 촉망받는 젊은 작가인 당신과 술을 마시고 있는 거요. 사실상 동료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나는 피카소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부자들이 초대하면 일단 초대를 받아들여서 그들을 기쁘게 한 다음, 사정이 생겨 못 가게 되었다고 통보한다고 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하루에 5달러 수입만 있으면 두 사람이 충분히 안락하게 지내고, 가끔 여행도 다닐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나는 내 첫 번째 단편 모음집을 출간한 미국의 어느 출판사에서 받은 선금 200달러에 약간의 저축금과 융자금을 보태 오스트리아의 포알베르크에서 겨우내 스키를 즐기며 글을 쓸 수 있었다.
생미셸 대로에서 가장 비싸고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자고 월쉬가 나를 불러낸 것은 내가 이상에 대한 소문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는 평소에 내가 먹던 별로 비싸지 않은 포르투갈산과는 전혀 다른, 납작하고 옅은 구릿빛이 도는 값비싼 마렌느산 생굴과 푸이퓌세산 포도주 한 병을 주문하고 나서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거냈다.
죽음뿐 아니라, 그보다 더한 여러 가지 시련과 맞서 싸운 흔적이 역력한 캔자스의 창녀가 사기군에 대항하기 위해 특효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늘 남자의 정액을 마시고 싶어 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그가 생굴을 좋아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지만, 그렇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잘게 부순 얼음이 깔린 은접시에 담겨 나온 두 번째 굴 요리를 먹기 시작한 나는 굴에 레몬즙을 뿌릴 때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섬세하게 오그라드는 굴 살점의 갈색 테두리를 관찰하며 껍데기에서 굴 알맹이를 떼어 내서 입에 넣고 조심스럽게 씹었다.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 나는 낮 공연을 보고 나서 생제르맹 대로를 혼자 산책하는 조이스와 우연히 마주쳤다. 시력이 몹시 나빴던 그는 무대 위 배우들의 표정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목소리만이라도 듣고 싶어 했다. 그가 내게 술 한잔하자고 청해서 우리는 카페 되마고에 들어갔다. 그는 스위스산 백포도주만 마시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우리는 단맛없는 셰리주를 주문했다.
가족 한 사람이 더 느는 바람에 겨울철이면 우리는 추위와 고약한 날씨를 피해 파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아내와 나, 우리 둘만 있을 때에는 겨울 날씨에 익숙해져서 추위가 별로 문제 되지 않았다. 아침에 나는 카페에 가서 크림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웨이터들이 카페 안을 쓸고 닦고, 분주히 청소하는 동안 계속 글을 썼고, 그러다 보면 카페 안은 차츰 따뜻해졌다. 아내는 추운 연습실로 피아노를 치러 갈 때면 스웨터를 여러 벌 챙겨서 갔다. 하지만, 우리 아들 범비가 태어나자, 아내는 피아노 연습을 서둘러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기를 돌보았다. 겨울철에 아기를 데리고 카페에 가는 것은 적절치 않은 일이었다.
우리의 목적지 쉬룬스는 활기차고 아담한 마을이었다. 가끔 장도 서고, 읍내에 제재소와 온갖 것을 파는 상점들도 있고, 여인숙과 연중 문을 여는 호텔 토브가 있었다. 넓고 편안한 토브의 객실에는 창문과 커다란 난로와 고급 담요와 양털 이불로 덮인 침대가 있었다. 간소하지만 훌륭한 식단을 제공하는 호텔 식당도 그렇고, 나무로 실내를 장식한 바 역시 무척 따뜻하고 안락한 느낌이 들었다. 호텔이 자리 잡은 넓은 계곡은 시야가 탁 트여 있어 객실에도 햇빛이 잘 들었다.
우리 세 식구 숙식비는 하루에 2달러 정도였다. 게다가 인플레이션 때문에 실링의 화폐가치가 계속 하락하는 바람에 숙식비는 점점 더 싸졌다. 그래도 오스트리아의 인플레이션은 독일에서처럼 빈곤으로 치닫는 극심한 상태는 아니었다. 실링의 가치는 등락을 거듭했고, 전반적으로 내림세였을 뿐이다.
나는 지금도 그 겨울의 소나무 향기를 기억하고 있다. 내가 나무꾼 오두막 안의 너도밤나무 잎사귀로 만든 매트리스 위에서 잠을 잤던 일도 기억하며, 여우와 산토끼의 흔적을 따라 숲 속에서 이리저리 스키를 타던 일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스콧 피츠제럴드, 그의 재능은 나비 날개의 고운 가루가 그려 내는 무늬처럼 자연스러웠다. 한때 그는 나비가 제 날개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듯이 자신의 재능을 깨닫지 못했고, 심지어 그것이 약탈당하거나 파괴되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중에야 상처 입은 날개와 무늬의 상태를 자각한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결국, 그는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비록 인생의 황금기는 아니더라도 작가로서 황금기에 있던 그를 만난 것은 내게 행운이었다.
그는 내게 왜 카페 라클로즈리 데릴라를 좋아하는지 물었고, 나는 오래전부터 내게 정든 장소였던 그 카페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그도 그 카페에 호감을 품게 되었다. 이제부터 그곳을 좋아하려는 그와 오래전부터 그곳을 좋아하는 나는 그렇게 라클로즈리 데릴라에 앉아서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과거에 자신이 쓴 작품들에 대해서도 별로 애석해하는 기색 없이 하찮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최근에 발표한 새 작품에 대해서는 결점을 꼬집어 말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스스로 대단히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한 권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새 책 <위대한 개츠비>를 누군가에게 빌려주었다며, 돌려받는 대로 내게 보여줄 테니 한번 읽어 보라고 했다. 이 작품에 대해 말할 때 스콧은 부끄러워 하고 있었다. 겸손한 작가라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훌륭한 작품을 완성했을 때 남들에게 그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마련이다. 나는 그가 얼마나 훌륭한 작품을 썼는지 짐작할 수 있었고, 그가 어서 그 책을 회수하여 내가 읽을 수 있기를 바랐다.
점심때쯤 우리는 리옹의 호텔에서 가져온 기막히게 훌륭한 도시락을 먹었다. 송로버섯을 넣고 구운 환상적인 닭고기 요리와 맛있는 빵, 그리고 마콩산 백포도주는 가히 일품이었다.
그는 프랑스인보다 이탈리아인을 더 싫어했다. 술에 취하지 않은 맨정신으로도 그는 이탈리아인들에 대해 순하게 말하는 법이 없었다. 영국인들을 미워할 때도 흔했지만, 너그럽게 봐주기도 했고 또 존경할 때도 있었다.
스콧은 우리에게 커다란 장부를 보여 주었는데, 그 안에는 그동안 자신이 발표한 여러 작품과 가격, 영화화한 작품의 판매 실적, 책 판매액과 인세 수입이 연도별로 꼼곰히 기록되어 있었다. 스콧은 마치 항해일지처럼 잘 정리된 자료들을 박물관의 큐레이터와 같이 담담한 자긍심을 내비치며 우리 두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그는 다소 불안해 보이긴 했지만, 친절한 태도로 자신의 소득명세서를 마치 풍경화처럼 펼쳐 보여 주었다. 하지만 거기에 풍경은 없었다.
젤다는 스콧이 글을 쓰는 것을 시샘하고 있었다. 그들과 마음을 터놓는 절친한 사이가 되면서 우리는 두 사람 사이에 하나의 규칙적인 행동 양식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스콧은 밤새도록 술을 마시는 파티에는 참석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매일 운동하고 규칙적으로 글을 쓰기로 했다. 그러나 그가 글쓰기에 몰입하려 할 때마다 젤다는 따분하다며 그를 술자리로 끌어들였다. 두 사람은 그 문제로 다투다가 결국 함게 술을 마시러 가면서 화해했고, 스콧은 술에서 깨려고 나와 함께 오랫동안 산책하고 나서 이제는 결단코 한눈팔지 않고 글을 쓰겠노라고 단단히 결심했고, 꿋꿋하게 새 출발 했다. 그러고는 또다시 이 모든 과정을 되풀이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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