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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왕따의 정치학

by Whatever it is, it matters 2022. 6. 6.

# 왕따의 정치학

독서일: 2017/05/12 오후 1:57
비고: 2017년 5월 12일 오후 1:57
작가: 조기숙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Part 1 노무현과 문재인 죽이기**

1장 왜 문재인은 왕따가 되었나?

기승전-문재인 ┃ 호남 왕따에서 친노·친문 왕따로 ┃ 개헌보고서 파동으로 본 친문 왕따의 시작과 끝 ┃ 정확하게 반문 프레임 ┃ 징계받지 않는 반문의 해당 행위 ┃ 친문 지지자와 박사모의 차이 ┃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두려운 그들 ┃ 한국 언론은 신뢰할 만한가 ┃ 반문 의원들이 개헌을 원하는 이유 ┃ 황진미와의 대담: 문재인은 왜 처음부터 탄핵을 주장하지 않았나?

문재인 때리기 현상에 대해 유시민 작가는 "1등의 운명 아니겠는가. 1등 하면 여기저기서 견제가 들어오는 법"이라고 했다.

나는 유시민이 마음에도 없는 덕담을 한 거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1등 주자였을 때, 누가 감히 개헌 이야기를 꺼냈나. 그보다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말에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한 일이 있다.

노 대통령 자신에겐 전혀 해당되지 않지만 국가의 미래를 위해 내놓은 안이었다. 하지만 그 때 각계 반응은 어땠던가.

좌우 언론, 새누리당, 심지어 열린우리당마저도 아예 개헌의 '개'자도 꺼내지 못하게 완전히 차단해버리지 않았던가. 그래서 이 후로 개헌 담론이 전혀 살아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선을 코 앞에 둔 이 시점에 너도나도 입만 열면 개헌을 말한다.

심지어는 문재인이 영입한 김종인 전 의원조차 아예 당을 나와 세력을 모으고 있다.

문재인만 빼고 제3지대에서 개헌을 지지하는 사람들끼리 연대하겠다며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다. 게다가 대통령의 임기를 3년으로 줄이겠단다. 정당정치에 대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2장 왕따 프레임을 완성하는 사람들

언론의 노무현 죽이기 ┃ 누구를 위한 오보·왜곡 보도인가 ┃ 왕따를 완성하는 사람들 ┃ 호남왕따의 방어자, 노무현 ┃ 왕따 피해자에게는 책임이 없는가 ┃ 정봉주와의 대담: ‘지못미’ 노무현

우리 사회 보수언론은 노무현을 왜 그리도 미워했을까? 노무현은 우리 사회에 존재했던 호남 왕따의 최초 방어자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은 왜 부산에서 민주당 간판을 떼지 않았을까? 2001년 11월 10일 당직자 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90년 3당 통합 때 따라가야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호남 포위 구도였습니다. 호남 대 반호남의 구도로는 정치가 바로 설 수가 없어서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92년 14대 총선 때 제 지인들은 모두 오지마라 와 봤자 떨어진다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야당을 통합했던 약속대로 김대중 대통령 사진을 둘러매고 부산 동구에 가서 사웠습니다. 제가 져도 좋았습니다. (중략) 제가 약속한 것은 부산에 야당 하나 심고 민주당을 전국당으로 만드는 것이 저의 소원이고 국민과의 약속이었기 때문에 저는 부산으로 내려갔고 싸웠습니다.'

 

 


**Part 2 구좌파 진보언론 대 신좌파 노무현**

 


3장 노무현과 진보언론의 이념적 갈등

진보언론의 양심 결벽증 ┃ 재정과 시간의 부족 ┃ 폐쇄적인 엘리티즘 ┃ 스톡홀름 신드롬 ┃ 언론의 특권과 킹메이커 바람 ┃ 언론권력의 사유화 ┃ 구좌파 언론과 신좌파 노무현 ┃ 유럽의 진보와 보수 ┃ 한국의 진보와 보수 ┃ 정봉주와의 대담: 21세기는 탈이념·탈물질의 시대

외국 기자들은 기사 하나를 쓰기 위해 여러 사람을 인터뷰한다. 때로는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하는데, **물론 밥값은 기자가 낸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기자는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유도신문을 하고 안 나오면 자기 마음대로 써버린다. 나 역시 몇 번 왜곡을 당하고부터는 믿을 수 없는 기자의 인터뷰는 피하게 되었다.

외국 기자들은 백지상태에서 질문을 시작하고, 식사가 끝날 때쯤 '당신 말을 이렇게 이해하면 정확하냐'고 확인을 한다. 어떤 기자는 기사를 내기 직전 내용을 이메일로 보내 인용이 정확한지 묻기도 한다.

그런데 정봉주 전 의원으로부터 다음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가 어떻게든 진보언론의 심리를 합리화하려고 스톡홀롬 신드롭까지 끌어들였다는 생각이 든다.

"진보언론이 언론사를 가지고 있으면 다양한 사업을 할 수 있어요.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그런 걸로 자본을 늘려가면서 좋은 기자들에게 잘해주고 좋은 기사 쓰게끔 계속 예우를 해주면 되죠. 그게 경영진의 책무 아니에요? 그런데 그런 걸 안 해요. 왜 안 하느냐고 물었더니 1년에 한 번 씩 연말이 되면 대기업으로부터 광고가 들어온다는 거에요. 십수억짜리가 말이죠. 그런 돈이 들어오니까 이런 푼돈은 눈에 안보인다는 거에요."

2010년 3월 8일 한겨레 성한용 편집국장은 중간평가를 앞두고 편집국 기자들에게 이메일로 소견발표문을 보냈다고 한다. 이 글에서 성 국장은 다음과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레디앙에 보도되었다.

"정권은 타도의 대상이 아니다. 재벌도 해체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1등 기업' 삼성의 존재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성 국장은 이 글에서 창간 초기 한겨레에서 정권은 타도 대상이었고 재벌은 해체 대상이었지만 경영난을 겪으며 삼성과 현대가 한겨레 최대의 광고주가 됐다며, "한겨레 22년은 변절의 역사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한겨레 주주와 독자들은 우리에게 정권 타도의 임무를 부여하지 않았고", "비타협 노선을 걷다가 장렬히 전사하라고 주문하지도 않았다"며 "(경영 문제에서도) 일정 부분 현실적인 타협을 하더라도 한겨레가 존립하며 창간정신을 구현하는 보도를 계속해달라는 것이 주주 독자들의 뜻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다음에는 "대한민국엔 한나라당 정권을 지지하는 다수의 사람이 있고 그들의 정치적 의사를 우리는 존중해야 한다"며 "정권은 타도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재벌 문제와 관련해서도 그는 "우리는 삼성의 부당한 1인 지배구조,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 무노조 방침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피해 등을 비판할 수 있을 뿐"이라며 "(삼성 임원들이 한겨레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듯) 한겨레도 삼성의 존재 가치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용철 변호사의 책 광고 논란과 관련해서는 "내가 알기로는 사회평론이라는 출판사와 우리 광고국의 대화 과정에서 충돌과 감정 대립, 그리고 오해가 있었다"며, "나는 사회평론의 태도를 바로잡기 위해 처음에는 광고단가를 높게 불렀지만 협상을 거쳐 광고를 실을 예정이었다는 광고국 간부들의 설명이 사실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안철수는 안랩 시절부터 기자의 결혼식이라면 빼놓지 않고 챙긴 것으로 유명한데 안철수와 진보언론의 허니문이 단순히 우호적인 인간관계가 가져온 결과였을까?

 

 


4장 노무현과 진보언론의 문화적 갈등

신좌파의 시작, 프랑스 68혁명 ┃ 신좌파가 꿈꾸는 세상 ┃ 노사모부터 촛불 시민까지, 한국의 신좌파 운동 ┃ 권위에 맞서다 ┃ 탈권위의 상징, 나꼼수 ┃ 구좌파 지식인의 착각 ┃ 구좌파를 위한 변명 ┃ 집단주의와 권위주의, 그리고 왕따 ┃ 친노는 누구인가 ┃ 선거 전략과 집권 전략은 다르다 ┃ 정봉주와의 대담 : 한국, 21세기 신좌파 운동을 열다

19세기 말 영국의 자유당은 정치적으로는 개혁적이었을지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유산 계급의 사유재산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노동당이 등장해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진보적인 의제를 제시하면서 자유당은 사라졌다. 노무현 정부 당시 많은 진보 지식인이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19세기 영국의 자유당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노무현만 때리면 당시 제3당이던 민노당이 제1야당이 되는 줄 알았다고, 민노당 출신 박용진 의원이 2012년 '국민의 명령'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고백한 바 있다. 그러나 노무현은 19세기 자유주의자가 아니었다. 노무현은 21세기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이 점에서 소위 진보 지식인과 언론이 노무현뿐만 아니라 노무현의 지지자인 친노의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68세대는 2차 대전 이후 평화와 풍요 속에서 자란 중산층의 자녀들이다. 이들은 전후 세대로서 배고픔과 전쟁의 위협을 모른다. 이들에겐 물질이 더는 중요하지 않기에 진보와 보수, 좌와 우가 기본적으로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히려 좌우가 서로 싸우면서도 똑같이 권위주의적이라는 점을 혐오 했다.

권위주의 문화는 기본적으로 집단주의에 기초한다. 집단주의는 집단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데, 이것이 유럽의 신세대에게는 설득력이 없엇다. 경제가 풍요로워질수록 인간은 개인주의적으로 변한다.

민노당이 원내에 진입하면서 경제 균열이 한국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자, 진보언론과 지식인은 영국처럼 자유주의 정당인 열린우리당이 사라지면서 민노당이 제1야당이 되리라 기대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에 가혹하게 굴었다. 불행히도 한국은 분단과 6.25를 겪은 나라다. 빨갱이, 좌파 기피증이 민노당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가로막았다. 이것이 우리가 유럽과 달리 제2세대 시민권을 성취하기도 전에 건너뛰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김대중 대통령이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세계 최강의 IT국가가 되었다는 점도 한몫했다. 인터넷은 시민에게 정보를 주며, 정보는 곧 권력이다. 제2세대 시민권을 확립하기도 전에 권력을 가진 시민들이 제3세대 시민권운동을 벌이기 시작한 게 노사모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민주주의를 실천한 노사모가 한국 탈물질주의 운동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은 인터넷을 활용해 대통령이 되었는데, 미국의 오바마는 2008년에야 이를 벤치마킹해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우리가 미국보다 6년이나 빨랐던 것이다.

우파는 노무현을 좌파라고 공격했고, 좌파는 노무현을 신자유주의자라고 공격했다. 앞서 잠간 언급했듯이,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노 대통령은 "그럼, 참여정부가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거냐"고 한탄했다. 그랬더니 좌우 언론은 노 대통령도 스스로 참여정부를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인정했다며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문화 때문에 그래요. 21세기의 키워드가 문화죠. 20세기에는 우리가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 자본가의 편이냐 노동자의 편이냐가 중요했지만요.

좌든 우든, 어떤 위계적인 질서가 있는 권위주의 문화였는데 그걸 한마디로 집단주의라고 해요. 20세기는 집단주의 문화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21세기는 좌우가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젊은 세대는 탈이념적 성향을 보여요.

신좌파는 어떤 권위에도 도전하기 때문에 누군가 자신을 통제하려 하면 즉각 반발한다. 통제와 지시로 움직이는 보수 세력으로서는 자발적인 탈물질주의자의 움직임을 죽었다 개어나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신좌파의 또 다른 특징은 자발성에 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좋아서 하는 것이다.

경향과 한겨레, 시사인까지 포함하여 언론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지식인은 최장집 교수라고 생각된다. 최교수는 대표적인 구좌파 지식인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검찰 장악, 미국과의 일방적 쇠고기 수입 조건 협상, 밀어붙이기식 4대강, 의회 내 독주 등에 대해 민주주의 후퇴가 아니라고 강변했다. 2008년 촛불집회가 일어나자 촛불을 끄고 국회로 들어가야 한다고 소리쳤다.

참여정부 말기, 소위 진보 지식인들이 "노무현, 유시민, 조기숙은 진보가 아니니 진보 논쟁에 끼지 말라"고 일갈한 적이 잇다. 20세기 이야기라면 이들이 맞다. 좌파가 진보였다. 그런데 노무현은 21세기 최초의 대통령이다. 나는 오히려 구좌파만이 진보라고 생각하는 그들이 더는 진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처음부터 친노들이 나서서 참여민주파를 세력화해 친노 왕따 문제를 정면돌파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노란 가신 집단이 아니고 가치 집단이기 때문에 노무현과 관계가 있든 없든, 신좌파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정치 세력화를 했어야 했다. 즉, 말 그대로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만들어내고, 그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이들에게 정당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과 결정권을 보장했어야 한다. 물론 노무현이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명숙도, 문재인도 친노 배제 공천을 함으로써 친노를 해체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리를 정치꾼들로 채웠다. 타 계파의 불평과 이를 확대 보도한 언론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다.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면 세력을 키워 자신이 속한 계파를 다수파로 만들면 된다. 다수파가 되어 소수자를 포용하는게 왕따 정치를 청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친노 정치인 누구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게 결과적으로 2017년 대선엔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만일 문재인이 마이웨이를 외치며 친문 패권 정당을 만들었다면 지금처럼 문재인을 향한 시민의 지지가 높지 않았을지 모른다.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되든지 김대중 대통령의 다음 말씀을 기억해 국민 눈높이에 맞는 리더십을 펼치기를 기대한다. "국민보다 반 발 앞서나가는 리더가 성공합니다."

 


**Part 3 호남 왕따와 친노 왕따, 그 불가분의 관계**

5장 참여정부 호남 홀대론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노무현의 이상, 우동영 좌미애 ┃ 노무현과의 인연 ┃ 노무현이 반대한 민주당의 분당 ┃ 열린우리당의 첫 총선과 탄핵 정국 ┃ 의리남 노무현 ┃ 정동영의 오해 ┃ 2007년 대선의 패배 ┃ 정봉주와의 대담: 화합의 시작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

더욱 놀라운 사실은 김대중 대통령 임기 말 지지도가 19%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노무현은 김대중을 밟지 않고 이겼다. 만일에 노무현이 김대중을 밟았으면 절대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본다. 폭스TV를 보던 중, 오바마 대통령이 이란과 핵무기 딜을 했는데 힐러리도 그걸 비판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폭스TV가 완전히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방송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나는 국제홍보론 수업 시간에 힐러리가 오바마를 비판해서 이제 대통령 되기는 글렀다고 말했다. 무엇이 팩트인지를 떠나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자기 당 후보가 현직 대통령을 비판하면 당내 분열이 일어나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2017년 대선에서도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분열 때문에 절대 집권하지 못할 것이다.

유연한 사람은 오히려 배신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어요. 원리주의자인 김문수, 이재오 이런 분들 보세요. 하루아침에 바뀌었죠. 극과 극은 통한다고 그러잖아요. 그것도 저는 뇌와 관련이 있다고 봐요.

봉하에서 2009년 4월 노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노 대통령은 "죽을힘을 다해 앞으로 헤치고 나갔는데 뒤돌아보니 물을 가르고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때 이미 노 대통령은 좌절과 절망에 빠져 있었다. 평생 지역주의에 맞서 싸워왔는데 이룬 것이 없다는 의미였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지역주의는 어느 사회나 세대교체에 의해 극복되기 때문에 최소 30년이 걸립니다. 미국은 100년도 넘게 걸렸습니다. 그나마 우리가 이렇게 빨리 극복하고 있는 건 전적으로 대통령님 덕분입니다. 초조해하지 마시고 조금만 더 기다려보세요."

 


6장 호남 홀대론으로 누가 이익을 보는가

호남-충청 연대가 필요했던 이유 ┃ 30년, 지역주의 청산에 걸리는 시간 ┃ 호남 왕따의 진정한 원인 ┃ 지역주의 선거의 비대칭성 ┃ 참여정부 호남 홀대론은 허구 ┃ 노무현의 호남 사랑 : 인사 ┃ 노무현의 호남 사랑 : 지역개발 ┃ 호남 홀대론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 ┃ 왕따의 고백

박명림 교수의 칼럼에 다르면 김대중 정부에서 지역총생산은 호남 평균이 28.82%로 전국 평균보다 9.37% 낮았다. 반면 노무현 정부에서는 호남 평균이 39.86%로 성장해 전국 평균보다 5.84% 더 높았다. 특히 노무현 정부에서 전남과 충남이 전국 최고 수준으로 성장했다고 밝혔다.

왕따의 고백이 가해자를 설득하진 못하겠지만, 수많은 방어자를 만들어내 이들이 다수가 되면 왕따는 자연스럽게 해소되기 때문이다.

신좌파의 시각으로는 구좌파와 우파가 권위주의적이란 면에서 차이가 없다. 신좌파는 좌우를 모두 부정하기에 탈권위주의적이고 탈물질주의적이며, 탈이념적이다. 문화적으로 리버럴하고, 경제적으로는 실용적이며, 정치에 관심이 많고 정치 지식도 많다. 부당한 권위를 부정하지만 대인 신뢰가 높고 기부도 잘 한다. 정치적 의사표현이 적극적이라 시위와 항의에도 적극 참여하며, 유머를 즐기고 정치를 문화의 영역으로 승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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